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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5월호 안보논단] 한미동맹을 지속해야하는 분명한 이유들
2017.05.11 Views 1670 관리자
한미동맹을 지속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들
김병륜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안보 환경에 거친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계 제로’의 상황을 어떻게 풀 것인지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가장 먼저 고려할 문제는 당연히 한미동맹이다. 어떤 나라도 순수하게 자신의 군사력만으로 나라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미군사동맹은 한국이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군사동맹이며, 당분간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군사동맹이기도 하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전 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국제적 연대의 출발점이
되는 종교·언어 측면에서는 고립된 국가라는 점을 무겁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팔레스타인 자지정부는
군사적 약세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교·아랍어라는 공통 요소에 뿌리를 둔 중동국가들의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이스라엘에 대항해 자치 기반을 확보했다.
한국은 중남미 국가들처럼 스페인어라는 공동 언어를 기반으로 지지를 이끌어낼 기반도 없다.
브라질을 제외하면 중남미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1982년 아르헨티나와 영국 사이에 포클랜드전쟁이 벌어졌을 때 남미국가들은 공통 언어에서 출발한
연대감을 바탕으로 아르헨티나를 지지했다. 한국은 동남아의 아세안이나 유럽의 EU 같은 지역국제기구나 지역공동체로 안보 담론을 형성하기도 쉽지 않다. 10억이 넘는 인구를 가진 중국과 함께하는 지역공동체는 ‘확장된 중국’에 불과하다.
전통 문화의 기반으로 보면 중국·일본과 연결되어 있지만 국력·인구의 격차를 생각하면 동북아
지역공동체는 공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언어·종교·지역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초국가적
연대에 고립된 국가들은 많지 않다.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은 그 자체로 존립이 가능한 인구와 영토를
가진 국가들이다.
아직은 국제사회에서 개별 변수에 불과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인구 1000만 이하 소국들은 제외하면
이 같은 범세계적인 종교·언어·지역적 편짜기 속에 고립된 국가들은 한국, 일본 정도 밖에 없다. 일본이 1930년대 이후 대동아공영권을 핑계로 침략전쟁에 나선 것도 일본이 지닌 전략적 한계를 정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돌파하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45년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일본은 미일동맹을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다른 안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당장 대량살상무기로 무장한 북한을
상대할 때, 미국을 배제한다면 대응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미래는 어떤가?
주변국들이 가진 국력을 생각할 때 한국이 안보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결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없다.
그렇다고 민주주의와 인권,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시민사회도
성숙하지 못한 중국과의 군사동맹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역시 당분간 답은 미국 뿐이다.
한국의 역대정부는 이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3년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쓰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
1953년 10월 1일 체결되고 1954년 11월 18일 조약 제34호로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한미군사동맹의 핵심 기반이다. 이 조약은 본질적으로 미국이 원해서가 아니라 한국 정부가 원해서 체결됐다는 점을 깊이 음미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처럼 지상군이 있어야만 방어할 수 있는 곳은 해군과 공군을 중시하는 미국 같은 나라에게
이상적인 1급 요충지가 아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는
1949년 3월 ▲한국 포기 ▲한국을 무조건 무력으로 지원 ▲제한된 조건 하에서 지원제공 등 세 가지 방책 중 세 번째 안을 NSC 8/2로 채택했다. 이 결정으로 주한미군이 철수했고, 결국 북한이 1950년 한국을 침략했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막는 안전판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인 셈이다.
이후 한국의 역대 정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동맹을 유지한다는 대전제를 지켜왔다.
한미 관계에도 서로 협의·조정·개선할 문제는 있을지언정 동맹을 유지하지 않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2000년대 이후 한국은 한미동맹에서 이중적 접근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 문제에서 그렇다. 미국의 대(對) 아시아 군사전략에서 이제 북한과 중국에 대한 대응이 일순위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군사동맹은 여전히 북한을 상대로만 작동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입장은 2006년 1월 19일자 한미 양국의 공동성명에 적나라하게 정리되어 있다.
당시 성명에는 “전략적 유연성의 이해에 있어 미국은 한국이 한국 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동북아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되어 있다.
이 성명은 결국 미중 간에 분쟁이 벌어질 경우 한국 국민의 의지에 반한다면 한국은 그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성명이 지금도 유효한 지 여부에 상관 없이 그 이후 한국 역대 정부는 비슷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대항하는 성격의 미국 주도 다국적 연습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례가 없다. 한국 외교부가 동남아 해양관할권 및 도서 영유권 분쟁에서 중국의 입장을 비판하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사례도 없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북한이 아닌 제3국을 상대로 한 연합훈련을 실시한 사례도 없다.
물론 통일이후 중국과 국경을 접할 수도 있는 특수한 지리적 상황, 한중 경제교류를 고려하면 이런 신중한 태도는 이해할 여지가 있다.
이른바 ‘한미군사동맹과 한중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병행’이 한국 정부의 공식적 입장인 것이다.
필자가 수년 전 한국국제정치학회의 회장이던 모 교수에게 “장기적으로 미중 대립이 격화되면 한미
군사동맹과 한중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병행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이 질문에 해당 교수는 “병행이 안된다는 생각은 냉전적 사고 방식”이라며 “미국도 한국의 특수 상황을
양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한국에게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은 아기에게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가 묻는 것과 같은 수준”이라며 “한국은 선택할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교수의 입장은 사실상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의 공통적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미국과 군사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적대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는 것이다. 필자도 큰 틀에서 이 같은 입장을 수긍하면서도, 앞으로 우리가 생각해야할 점이 남아 있다고 본다.
어떠한 국제관계도 기본적으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출발점으로 한다. 한국은 한미동맹에서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Take’하고 있다. 첫째는 북한이 침략전쟁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막는 억제
효과다.
둘째는 그럼에도 북한이 오판한다면, 북한의 침략을 격퇴할 수 있도록 증원전력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이 한국에서 얻을 수 있는 ‘Take’는 무엇인가? 한반도가 미군 입장에서 포기할 수 없는
핵심요충지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겠지만, 1949년 3월 미 국가안보회의(NSC)서 한때 ‘한반도 포기’까지
안건에 올려 고민한 사례에서 보듯 지상군을 투입해야 방어 가능한 한반도는 미국 입장에서 요충지이자
동시에 아킬레스건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서 가장 이상적 요충지는 대륙으로 전력 투사가 용이하면서도 해·공군만으로 방어 가능한 대륙 인근의 섬이다.
한반도가 지닌 전략적 가치를 과대 평가하는 사고방식은 동맹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에 판매하는 무기가 미국의 ‘Take’라고 생각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상당수
국가들에게 고성능 무기 판매를 스스로 제한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국이 대외관계에서 무기 판매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더구나 한국이 미제 무기를 수입하는 것은 상호운용성
확보를 위한 고려도 있기 때문에, 이 영역을 순수하게 미국의 ‘Take’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견일 수 있다.
미국의 국제 활동에 대한 기여는 어떠한가.
한국은 베트남전 참전 요청에 응했지만, 그 이후 걸프전, 이라크전, 대테러전 당시 대민지원에 주력했을 뿐 전투임무 위주의 파병 요청에는 응하지 않았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미동맹은 중국을 상대로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나름 한국의 국익을 고려한 한국 정부의 냉정한 판단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미국 일부에서 한국을 놓고 “동맹인가, 의존인가?(Alliance or Reliance?)”
혹은 “한국은 신뢰할만한 동맹인가?(Is Korea a Reliable Ally?)” 라는 의문이 작은 목소일망정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한미동맹이 변함없이
유지될 것이란 믿음은 언제인가 착각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한미동맹이 중요하다는 인식으로는 부족하다. 한미동맹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