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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위에 저 소나무

2025.12.05 조회수 34

남산 위에 저 소나무   1977년 3월에 시작한 군 생활을 2012년 7월말 부로 마감했다. 전역하면서 서울에 정착한 나는 종종 남산에 올랐고, 2023년부터는 주 1회 정도 남산을 찾는다. 전역 직후에는 사회적응 차 갔다. 집에서 출발하여 신금호역, 해병대산(금호산), 매봉산, 반얀트리호텔, 국립극장을 거쳐 팔각정까지 걸어가면 2시간이 걸렸다. 요즘은 심신관리 차 남산공원에 간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장충체육관 앞에 도착하여 한양도성 순성길을 따라 신라호텔, 반얀트리호텔,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둘레길을 걷는다. 첫 남산행에서 애국가 2절의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의 소나무가 궁금해 둘러보았지만, 일부 군락 외에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가 눈에 띄지 않아 궁금하였다.   남산은 해발 270m이며, 서울의 중심에 위치하여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정상에는 팔각정과 남산서울타워가 있다. 조선 초에 태조가 도읍지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겨온 후, 남쪽에 있는 산이라 하여 남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경복궁에서 바라볼 때 앞산이기 때문에 남산이라는 설(說)도 있다. 남산의 ‘南’ 자에는 앞이라는 의미도 있어 경주(慶州) 등 전국 곳곳에 남산이 존재한다. 내 고향 경북 청도(淸道)에도 남산(870m)이 있다. 남산공원은 1968년에 개원했으며, 1991년부터 8년간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을 추진하여 어울리지 않는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정비했다. 이때 소나무 1만 8천여 주를 심었다. 남산공원은 맑은 공기를 제공하는 자연 공간이자, 시민들이 산책과 운동, 휴식을 하는 여가 생활 장소다.   전역 직후에는 보병장교의 고지점령 훈련 경험이 작용해 정상의 팔각정까지 오르는데 중점을 두었으나, 요즘은 남산둘레길을 걸으며 자연을 느낀다. 남측숲길과 북측순환로를 연결한 7.5km의 남산둘레길은 힐링(healing) 공간인 남산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산책길이다. 남산둘레길을 걸으면서 나는 소나무에 관심을 가지고 주변을 살펴본다. 남산에 친숙해질 즈음, 팔도소나무단지와 소나무힐링숲에서 남산에 산재(散在)한 소나무들과 조금 다른 소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팔도소나무단지는 ‘남산제모습가꾸기’ 사업을 하며 철거한 외인아파트 자리에 조성되었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1995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대표적인 소나무들을 옮겨 심은 후, 1997년에 개장했다. 현재 이곳에는 서울시 등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소나무 80그루가 있다. 팔도에서 모인 소나무들은 형태와 줄기, 잎, 색깔이 조금씩 다르지만, 자태(姿態)가 늠름하다. 석호정(石虎亭, 국궁 도장) 부근의 소나무힐링숲에는 1만 3천m² 규모의 소나무림이 보호‧관리되고 있다. 소나무숲이 만든 자연 경관과 마사토 흙길이 조화를 이룬다. 평상과 데크(deck), 정자가 설치되어 있어 휴식과 삼림욕이 가능하고, 걷기에 좋다. 2017년에 조성하여 예약제로 부분 개방했다가 2023년부터 상시 개방(매주 월요일은 정비를 위해 폐쇄)한다.   남산공원을 관리하는 중부공원여가센터가 2022년에 남산의 소나무에 관해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남산에는 소나무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약 17%). 조선시대부터 보호(지킴)와 동시에 이용(땔감)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남산의 소나무 나이는 얼마나 됐을까요? 조선 초부터 살아왔다면 600세가 넘었겠지만, 남산에 그렇게 오래된 나무는 없습니다. 주변 환경에 의해 장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산에서 가장 오래된 소나무는 나무 기준, 가슴 높이의 지름이 20cm 이상인 소나무 23주를 대상으로 나이테를 측정한 결과, 최소 34세, 최고 약 148세로 확인됐습니다. 최고령 소나무는 고종 11년(1874년)부터 생육하여 지금까지 살아온 셈입니다. 수령 148년 소나무의 위치는 남사면 소생물 서식지 근처에 있으며 지름은 49cm 정도입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원산지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나무다. 2022년에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설문조사한 결과, 국민들은 대표적으로 제시된 12개 수종 중에서 소나무(37.9%)를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았다. 조선시대에는 전국 산림의 1/2이 소나무였으나, 현재는 1/4 수준이다. 안타깝게도 소나무재선충병(材線蟲病)과 산불로 인해 감소하는 추세다. 소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줄기 표면이 거북의 등껍데기처럼 갈라진다. 이에 ‘남산 위에 저 소나무’ 모양이 마치 철갑(鐵甲)을 두른 듯이 보여 애국가에 등장하였다. 애국가 작사자에 관해 여러 설이 있으나,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조선의 정치인이자 교육자였던 윤치호(1865~1945)가 1907년에 작사했다는 사실이 정설이다. 윤치호가 처음에 “남산 우헤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 이슬 불변함은 우리 긔상일세”로 지었는데, 1940년에 우헤는 위에로, 바람 이슬은 바람 서리로, 긔상은 기상으로 바뀌었다.   겸재 정선(1676~1759)이 어느 봄날에 필운대(종로구 필운동의 백사 이항복 집터)에서 조망한 한양도성을 그린 작품, 필운대상춘도(弼雲臺賞春圖)에 남산이 포함되어 있으며, 소나무들이 보인다. 요즘은 서울 시내에서 남산을 바라보면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잡목과 남산서울타워만 눈에 들어온다. 1975년에 준공된 남산서울타워는 높이가 236.7m이며, 최초에 방송용 송신탑으로 건설했다가 전망대를 추가했다. 2005년에 YTN 측이 타워 전망대의 영업장 개조 공사를 마치고 N서울타워로 부르기도 했으나, 현재 정식 명칭은 남산서울타워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의 필수 방문코스가 되었다. 타워 전망대에 360도 회전하며 서울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레스토랑이 위치한다. 밤에는 거기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울의 불빛을 볼 수 있다. 나의 그곳 추억으로는, ①결혼 30주년 때, 3년 전에 하늘나라로 간 아내와 함께 기념 만찬을 했다. ②현역 시절에 터키 지상군 군수사령관이 방한했을 때, 군사외교 만찬을 하며 우의를 다졌다. 그는 형제의 나라 수도의 야경에 감탄하면서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높게 평가했다.   2025년 초, 눈 내린 다음 날 소나무힐링숲에 갔더니 ‘철갑을 두른 듯’ 했던 소나무들이 넘어져 있었고 서있는 소나무의 가지들은 부러져 있었다. 눈 피해를 당한 소나무들을 바라보노라니, 세월이 흐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남산 위에 저 소나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이 생겼다. 풍우상로(風雨霜露)에서 나온 ‘바람 서리 불변함’은 대한사람의 강인한 정신과 불굴의 의지를 뜻한다. 바람과 서리(風霜)에도 변치 않는 우리 민족의 꿋꿋한 기상을 표현했다. 나는 남산에 갈 때 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를 되뇐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넘어지지 않고, 부러지지 않고, 번영하기를 기원한다.  

축배사와 축배구호

2025.11.15 조회수 78

미국 트럼프대통령, 중국 시진핑주석등 많은 세계정상들이 참석하는 APEC회의가 경주에서 열렸다. 이 회의는 우리나라가 세계10대 경제대국이며 군사강국으로 우뚝 올라섰음은 물론 5천년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아주 뜻깊은 자리였다. 회의가 끝난후 이재명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 21개국 정상 및 귀빈들을 위한 환영만찬을 베풀었다. 한국 대통령의 건배사와 건배제의가 있겠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이어 등단한 이재명대통령은 장황한 건배사에 이어 부드럽게 잔을 올리며 “건배!”하고는 자리로 내려갔다. 무엇인가 우리문화에 어울리지 않는 건배라는 구호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건배(乾盃)라는 용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많이 쓰는 용어로서 잔을 비운다는 뜻으로 우리 말도 아니고 별뜻도 없는 용어다. 그리고 건배사나 건배제의라 말보다는 축배사와 축배제의라는 말이 적합한 용어다. 우리나라 역사와 전통, 문화를 부각시키기 위해 신라고도 경주를 회의장소로 정한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그날 이재명대통령은 간단한 축배사에 이어 “오늘 오신 모든 나라의 무궁한 발전과 국가발전은 물론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하시는 여러분들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제의 하겠습니다” 함께 복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이렇게 진행했으면 어땠을까? 좀더 분위기 있고 조금은 우리 문화적이지 않았을까? ​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 50여년전 군대의 공식,비공식 만찬이나, 회식 그리고 축배사와 축배구호를 어렵게 만들어 사용하던 때를 항상 떠오르게 한다 ​ 군대의 축배구호 “위 하 여 ! ” 小 考 1. 군대의 축배구호는 어떻게 만들어 졌나? “위하여!”란 구호는 76년도에 육군대학에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후 육해공군에 급속히 전파되었으며 자연스럽게 전 국민들에게 퍼져나가 어느 모임에서나 “위하여-!”란 구호를 제창하면서 목표달성을 다짐하고 모임의 단결력을 과시하는 용어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군에서 만들어 사용한 순수한 취지나 국민들의 애용에도 불구하고 한때는 군사문화의 상징으로 지탄받아 보이지 않게 정치적 탄압(?)을 받기도 하고 모임의 성향에 따라 변형되어 사용하기도 해왔다. ​ 1976년도 육대교관시절 어느날 처장님(대령정봉률 육15)이 나를 불러 영어책한권을 던져 주며 말했다. “곽소령! 이 책은 총장님(소장 김영일, 전 광복회장)께서 주신 거라네. 총장님 말씀이 군에서의 만찬이나 회식도 사기와 단결을 배양하는 훈련의 연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하시면서 외국 군대의 만찬은 짜임새도 있고 활기에 넘치는 느낌도 드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니 좋은 아이디어를 내 보라는 말씀이네. 곽 소령 자네가 좋은 방안을 한번 만들어 보게! “ 사무실로 돌아와 영어책을 읽어보니 서양 상류사회의 손님접대에 관한 내용이 상세하게 적혀 있을 뿐 총장님 지침을 충족시킬 만한 내용은 없어 보였다. 나는 연속된 강의와 교범연구에도 시간이 없는데 이런 쓸데없는 것(?)을 맡기시다니... 속으로 불평을 하며 별로 참고가치도 없어 보이는 영어책을 서랍에 던져놓았다. 그후 그럭저럭 10여일이 그냥 잊은 상태로 지나간 어느 날이었다. 오전 강의를 들어가려는데 참모장(대령 원호연 육12)에게서 전화가 왔다. “만찬행사 진행관계 곽 소령이 맡았다면서? 어떻게 다됐나? 총장님께서 내일쯤 보고받기를 원하시네. 미리 나도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참모장님! 제가 강의준비에 바빠 미처 준비를 못했습니다. 한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 하나도 준비 안했는데 내일 보고하라니 정말로 낭패를 당할 일 이었다. 적당히 핑계를 대서 위기를 모면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도 못 잡은 상태였다. 더구나 강의 해가면서 일 주일 안에 높은 분들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낼 자신도 없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명령이면 무엇이든 기간 내에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 군대인 것을 .. 강의가 끝나면 참고가 될 만한 자료를 찾아 나섰고 밤에는 각종 만찬과 회식에 대한 구상과 생각으로 며칠 밤을 설쳤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의 공식, 비공식만찬 문화는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휘관이 만찬장에 들어와 격려말씀 몇 마디가 끝나면 주거니 받거니 먹고 마시는 것으로 진행되는 것이 전부였다. 어떠한 격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시작과 끝이 분명하지 못하고 패잔병들의 회식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활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옛 부터 大家집이 계속 번창하려면 그 집안에서 애기 울음소리, 글 읽는 소리, 방망이 다듬이 소리. 이 三聲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군대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병영에서 군가, 함성, 총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부대가 어찌 전투에서 승리 할 수 있단 말인가?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는 만찬도 필요하겠지만 군대의 만찬이나 회식은 마음을 함께 다지는 축배구호복창이나 군가, 노래 등이 적당히 곁들이는 것이 더욱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부대의 공식, 비공식만찬과 손님접대, 각종 회식 등을 구분하여 입장순서부터 좌석배치, 진행요령과 마지막 마무리절차까지 세부적으로 구상해 나갔다. 축배 제의자는 간단한 축배사를 하고 힘차게 축배구호를 외치면 참석자 모두 우렁차게 따라 외치도록 한다. 그런데 축배구호를 무엇으로 해야 할 것인지가 문제였다. 간단한 축배사에 이어 구호를 선창하면 영국, 미국에서는 hear! hear!(옳소!)등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며 우리는 건배, 부라보, 감빠이 등이 구구각각으로 이용되긴 했지만 외국냄새, 특히 왜색이 물씬 풍기는 용어라서 큰 거부감이 앞섰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좋은 말은 떠오르지 않으니 밥맛도 없었다. ​ 수업 중 늘려 잡은 실습시간에도 무슨 좋은 방안이 없을까 혼자 고민하면서 강의록을 맥없이 넘겼을 때 내가 좌우명으로 삼다시피한 문구가 눈에 들어 왔다. “임무를 수행하다 난관에 봉착하면 임무와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라.” 그렇지!, 만찬이나 회식의 목적이 무엇인가? 장병들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부대단결을 위하여,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닌가? 공통분모 용어인 “위하여”란 말을 속으로 되 뇌이면서 앞에 여러 가지 말들을 붙여 봤다. 육군대학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건강과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등등 어떤 이름을 붙여 봐도 어울릴 것 같았다. 나는 보고 서류를 들고 육군대학 총장실로 올라갔다. 군은 국가에 대한 충성집단이기 때문에 공식만찬에서는 지휘관과 함께 태극기와 부대기가 입장하고 메인 테이불뒤에 깃발을 세운다 . 지휘관은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참석자 모두 일어서서 먼저 조국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국가와 민족을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각하를 “위하여” 축배제의를 한다. 두 번째로 부지휘관은 부대장병과 부대를위해 혼신을 다하는 지휘관을 “위하여” 축배한다. 위 두 가지 축배는 의무적으로 한다. 그 다음은 앉아서 필요에 따라 명분을 만들어 축배와 여흥을 진행하도록 한다. 축배 제의자가 000을 “위하여”라고 선창하면 모든 참석자들은 술잔을 높이 들어“위하여”하고 우렁차게 복창하도록 한다. 박력을 불어 넣으려면 짧게 연속 2-3번을 복창 할 수도 있다. 복창이 끝나면 큰 박수로 함께 축하한다. 모든 공식만찬이 끝나면 모두 일어서서 부대가를 합창후 큰 박수와 함께 행사를 종료한다. 비공식만찬이나 회식은 주최자(초청자)가 영접을 하고 먼저 초청받은 장병들을 위하여 축배를 하며 피초청 대표자는 주최자를 위한 축배를 하도록 한다. 대한민국과 대통령을 위한 축배, 태극기와 부대기설치, 부대가 제창은 비공식행사시는 생략한다. 보고가 끝나자 총장님은 배석자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어떤가? 내가 보기에는 잘된 것 같은데... ”위하여“란 구호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속으로 몇 번 반복해보니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구만. 다른 의견이 없으면 기간장병 및 학생장교와 주부대학생(학생장교부인)들에게도 교육시키는 것이 좋겠네! 그리고 육군 예식규정에도 필요할 것 같으니 육군본부에 보고하도록 하게 !“ 이렇게 해서 공식, 비공식 만찬절차와 “위하여”란 구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 2. 축배구호 “위하여”는 어떻게 빨리 전파될수 있었나? 나는 학생 및 기간장병들과 주부대학생들에게 시범을 보여 가며 교육을 시켰다. 전국 각지로 배치된 육대 졸업생들은 회식자리에서 “위하여” 구호를 전파하였으며 삽시간에 전군에 퍼져 나갔다. 당시에는 대학생들이 군사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군대 음주회식문화와 축배구호가 빨리 전파 되었다. 적당한 축배 용어가 없었던 민간 사회에도 자연스럽게 받아드려 졌으며 대학생들, 정치인들도 재치있게 변형하여 사용했다. 서울대생들은 “위해서”라하고 연세대는 “위하세” 고려대는 “위하고”라는 구호로 대학생 다운 위트를 발휘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여야의원들 회식에서는 먼저 여당의원이 축배말씀과 함께 “위하여!”라고 “여”자를 강조하여 축배하면 야당의원들은 왜 여당만 위하냐며 야당의원 축배시는 “위하야!”로 “야”자를 크게 선창하여 여야간에 재미있는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몇 년전 어느 주요 일간지(중앙일보로기억)에 축배구호중 어느 용어가 가장적합한가라는 기획시리즈에 축배용어도 한 면을 차지했다. 그중 “위하여!”란 용어가 가장 적합하고 전 국민의 80%이상이 즐겨 사용한다고 응답한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 3 문민정부 들어 군사문화 잔재로 인식 보이지않는 박해? 이러한 국민들이 애용하는 축배용어로 자리 잡아 왔지만 문민정부가 들어서서는 군사 문화의 잔재로 인식되어 환영받지 못했고 특히 공직사회에서 따돌림 받기 시작한 것은 93년10월 부터로 생각된다.. 93년 9월하순경 국방장관(권영해육15)이 국군의날 예행연습차 계룡대에 내려왔다. 대통령부임후 첫 국군의 날 행사이니 국방장관은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열, 분열연습을 마치고 3부요인과 국군장병들을 위한 연회장에 들어 온 국방장관은 시나리오대로 먼저 축배말씀과 함께 대통령각하를 “위하여!”라는 예행연습도 진행되었다. 당시 군의 생리를 잘 모르는 김영삼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군의 충성심에 의문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므로 가능한 군을 멀리하고 견제 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대부분 장병들은 문민 정부가 군을 매우 못마땅해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 ​ 예행연습 검토과정에서 국방장관은 “위하여!”라는 축배구호가 적절한지 검토해보라고 지시하였다. “위하여”용어를 직접 만든 나는 자연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후 국군의 날(1993.10.1)행사가 시작되었다. 이번행사는 소규모행사 예산이 책정되었으나 새로운 국군통수권자를 처음 맞이하는 국군의 날 행사였기 때문에 서울등 전국각지에서 많은 손님들이 초청되었고 대규모에 가까운 큰 행사로 치러졌다. 사열과 분열이 끝나고 계룡대 본관 건물앞 야외 연회장에 3부요인들과 국군장병,그리고 많은 귀빈들의 박수를 받으며 김영삼대통령이 들어섰다. 각 테이불에 놓인 술잔을 모두 따랐다. 권영해국방장관은 마이크를 잡고 국군의 날을 축하해 주기위해 오신 대통령과 많은 귀빈들께 감사를 표하고 앞으로 국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대통령께 충성을 다짐하는 요지의 인사말씀이 계속됐다. 나는 국방장관이 축배구호를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매우 궁금했다. 전번 예행 연습시 공개석상에서 위하여란 구호가 적합한지 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에 이번에 장관이 직접하는 축배구호는 청와대를 비롯한 주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참작하여 얻은 결론일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이 3당합당후 대표최고위원시절 비록 어색하지만 축배구호를 “위하여”라고 선창하는 것을 TV에서 몇 번 본 기억이 났다. 그러나 나는 국방장관이 위하여란 구호를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군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던 구호를 최근까지 군에 몸담고 있던 국방장관이 검토해보라고 지시하는 자체도 그렇고 청와대는 위하여 란 구호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문민정부라는 용어에서도 군에서 만들어진 용어하나 끼어들 틈을 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영삼대통령을 비롯한 3부요인들과 각부 장관, 국회의원등 많은 손님들은 술잔을 들고 국방장관의 축배 구호를 복창할 준비를 하면서 조용히 인사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인사말이 끝나고 장관은 술잔을 높이 들면서 “건배-!”라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참석자들의 건배 복창소리는 매우 작아 맥이 빠진 느낌이 들 정도였다. 민간 손님들은 점잔을 빼느라 그렇고 군인들은 건배라는 용어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가 바로 정계에서나 공직사회에서 “건배”라는 용어가 뜨고 “위하여”가 공직사회에서 왕따 당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 물론 위하여를 사용하지 말고 건배용어를 사용하라는 어떠한 언질도 없었지만 그러한 눈치를 못 알아차리는 고위공직자는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골프 안칠 테니 알아서 하라는 것과 똑같은 통치 스타일 인 것이다. 그러나 군내부에서는 이러한 일이 입에 오르내리거나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며 위하여란 축배 구호 사용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국방장관, 차관이 주관하는 회식에서는 건배구호를 많이 사용한 것으로 기억된다. 건배라는 용어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많이 애용하는 말이지 순수한 우리말은 아니다. 그리고 잔속의 술을 완전히 마시자는 뜻 이외 별의미도 없는 외래어로서 내가 육대교관시절 검토대상도 안돼 초기에 탈락시킨 용어였다 . 그런데 문민정부 책임자들은 국민들까지 애용하는 순수한 우리말용어는 멀리해 버리고 일본의 건배용어를 쓴다는 것은 그만큼 군이나 거기서 파생된 군사문화에 대한 증오가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 4. “위하여”와 “건배”의 보이지않는 암투 ​ 그 후 어느 정도 기간 까지는 “위하여”와 “건배”가 혼용되면서 보이지 않는 암투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 해 10월 국회 국방위원들이 계룡대 국정감사차 내려왔고 육군 감사후 그 날 저녁 영내 회관에서 육군총장(대장 김동진 육17) 주최 만찬이 있었다. 먼저 주최자인 육군총장의 인사말씀과 국방위원들을 위한 축배제의가 있었으나 국회의원들의 “위하여” 복창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의 옆에는 최형우의원이 앉아 있었는데 "위하여 "복창은 하지않고 무표정하게 술잔만 약간 들어올릴 뿐이었다. 답례로 국방위원장(신00의원)의 축배제의가 있었는데 축배구호는 예상대로 “건배”였다. 내옆의 최의원을 비롯하여 국회의원들의 건배 복창소리는 비교적 크게 들려 왔으나 대신 군인들의 건배복창소리는 작은 것 같았다. 군 고위 장교들은 사실 신00위원장의 군 경력 때문에 말은 안 해도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 신의원은 육군하사로 복무중 근무이탈한 탈영병이라 했다. 그리고 도피 생활중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는 주장이 매스컴에 실려 있었다. 왜 하필이면 탈영병출신이 국방위원장인가. 국방위원장 할 사람이 그렇게도 없단 말인가. 고위층이 올바른 판단력을 갖인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있을수 없다고 흥분하는 장병들도 있었다. 옛날부터 탈영죄는 죽을 때 까지 따라다니고 체포되면 징역간다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라고 볼수는 없으며 일부 사실에 가까운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탈영죄(근무이탈죄)가 평생 가는 것이 아니고 근무이탈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그러나 탈영병은 7년 이상 지나도 군에서 전역명령이 없는 한 현역신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각군총장의 부대복귀명령에 따라야하며 이를 위반하면 명령위반죄로 처벌된다. 명령위반죄의 공소시효는 3년이기 때문에 3년마다 한번씩 탈영병 부대복귀명령을 내리니 탈영죄는 평생간다는 말이 생겨 날만도 하다. 그런데 탈영병이 어떻게 이런 법망을 벗어나서 국방위원장까지 올라와 탈영병복귀명령을 발령하는 장관이나 각군 총장 앞에서 국정감사선서를 받고 똑바로 잘하라고 호통치는 위치에 있으니 참으로 세계토픽감이 될만한 일이 아닌가? 명예와 자존심이 구겨진 고위장성들과 군부독재의 핵심세력으로 못마땅히 보는 국회의원들 간에 흥겨운 분위기가 쉽게 솟아날 것 같지 않았다. 옆 좌석에 술을 따라주고 일부의원이나 참모부장들이 서로 돌아다니면서 술을 권했지만 흥겨운 분위기는 살아나지 않았다. 군 출신인 윤태균(육13)의원이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고 술잔을 높이 들어 육군을 “위하여!” 하고 축배를 제의한 다음 노래를 부르고 원맨쇼를 하면서 까지 분위기를 살려보려 했다. 그러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국방위원장이나 최의원의 얼굴에는 못 마땅해 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다. 윤의원은 민망하고 멋쩍었던지 벗어놓았던 상의를 들쳐 입고는 “내 할일은 다했으니 난 먼저 갈랍니다.” 하면서 뚜벅뚜벅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윤의원의 걸어나가는 뒷모습이 군사문화 잔재인 “위하여” 보따리를 싸들고 쓸쓸히 정치계를 완전히 떠나가는 듯한 처량한 그림으로 나에게는 비쳐졌다. ​ 5. 겉으로는“건배”구호 완승, 내면적으로는 "위하여" 건재 ​ 94년 8월이던가? 군 고급지휘관들은 김영삼 대통령의 오찬 초청을 받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청와대 예방시 음식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지만 당시 매스컴에는 모든 오찬손님에게 칼국수를 대접한다는 소식이 퍼져 있었다. 사각 테이불 오찬장에는 간단한 반찬과 포도주가 놓여 있었다. 군 고위 장성들은 김영삼 대통령과 함께 오찬장에 앉자마자 김이 무럭 무럭나는 칼국수 그릇이 들어 왔다. 그러나 그 그릇에는 칼국수가 담겨있는 것이 아니고 떡국이 들어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오찬 손님들에게는 항상 칼국수를 준비하는데 전후방에서 고생하는 군 지휘관들을 모처럼 불러놓고 칼국수를 대접하기가 그래서 떡국을 준비시켰다고 하면서 배불리 들라고 했다. 옆에 앉은 청와대 참모들은 군 지휘관들 덕분에 떡국을 먹게 됐다면서 대통령이 군을 끔찍히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귓속말로 덧붙였다. 국방부장관(이병태 육사17기)은 포도주잔을 들고 축배제의를 하기 위해 일어섰다. 장관은 청와대초청에 감사하고 대통령님의 뜻을 받들어 국방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인사말과 함께 대통령님을 위하여 “건배-!“라고 선창했다. 다음은 이양호 합참의장(공사8기)차례였다. 이 의장은 간단한 축배 인사후 “위하여-!”라고 크게 외쳤다. 다른 사람들은 개의치 않은 눈치였으나 축배구호를 지켜보아온 나는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이양호장군은 정치적 감각에 어두운 순수한 군인 타입이었으며 전 권영해장관의 축배구호검토 결과를 전달 받지 못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김동진 육군총장(육17), 김홍렬 해군총장( 해 16), 김홍래 공군총장(공 10)이 “건배”란 축배구호가 이어 졌고 오찬 마지막에 김영삼 대통령의 군 지휘관들에 대한 격려말씀과 함께 “건배”구호로 청와대 오찬이 마무리 됐다. 그러나 건배구호는 국방장관, 대통령참석 행사용일뿐 "위하여"란 축배구호는 군대뿐만아니라 국민들속으로 더욱 파고 드는것 같았다. ​

백만장자

2025.11.01 조회수 202

백만장자   추석 연휴가 끝난 주말에 ‘현금 없는 백만장자들’이란 조간신문 기사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블룸버그(Bloomberg)가 “현금에 쪼들리는 백만장자(cash-strapped millionaires)가 급증하고 있다.”라고 한 내용을 인용 보도하면서 우리나라의 현실도 소개한 내용이다. 블룸버그는 “휴가용 별장, 개인 제트기와 요트, 오트 쿠튀르(고급 의상) 쇼핑 같은 고전적인 백만장자 라이프스타일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라며 그 현상을 전했다. “자산은 주택이나 연금에 묶여 있고, 물가 상승과 금리 부담이 겹치며 실제 느끼는 부유감(富裕感)이 떨어지고 있다. 상당수는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종이 백만장자(paper millionaire, 문서상 백만장자)’다.”라고 했다. 이어서 기자는 KB금융의 ‘2024 한국 부자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의 부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은 부동산에 훨씬 더 기울어져 있다. 한국 부자(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의 부동산 비중은 55.4%에 달한다. 현금 등 유동성 금융자산은 11.6%에 불과하다.”라고 설명했다.   ‘백만장자(百萬長者)’란 미화 1백만 달러(한화 약 14억 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부자를 말한다. 물가 상승과 화폐가치 하락으로 21세기에는 1백만 달러 자산이 부자라기보다 중산층과 상류층 사이 정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는 1백만 달러가 보통사람은 한평생 모으지 못할 자산 규모였기 때문에 ‘백만장자’는 곧 부자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부자의 관용적 표현으로 쓰이고 있다. 이 용어는 1719년에 미국의 금융가 스티븐 펜티먼(Steven Fentiman)이 불어(millionnaire)로 처음 사용했고, 1816년에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George Gordon Byron)이 영어(millionaire)로 처음 기록했다고 한다. 당시 기준으로 총 자산에서 총 부채를 뺀 순 자산이 1백만 달러 이상인 부자를 뜻하는 말이었다.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인구 78억 명 중 0.7%에 해당하는 5천 608만 명이 ‘백만장자’였으며, 대한민국은 5,100만 명 인구의 2%인 105만 명이 이에 포함되었다. 스위스 투자은행(IB) UBS의 ‘2025 글로벌 자산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백만장자’ 수는 130만 1천 명이다. 전체 인구 51,175,725명의 2.54%를 차지한다. 2020년보다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 이는 금융자산의 증가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기업 가치의 상승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위의 통계를 보면 21세기에도 지구상에 ‘백만장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3백 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1백만 달러를 인식하는 상대적 가치는 변했으나, 절대적 가치로는 변함없이 큰 돈이다.   추석 전에 어느 자리에서 전 국민 90%에게 1인당 10만 원을 지급하는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원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A는 강남에 아파트를 보유하여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고 말했으나, 서운한 얼굴 표정이 아니었다. B는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우리나라 소득 상위 10%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했다. C는 침묵을 유지했는데, 지급 대상인 듯했다. 정부는 지급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 소득과 자산을 기준으로 삼았다. ①2025년 6월 건강보험료 납부 금액이 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가구, ②가구원 합산 재산세 과세표준 합계가 12억 원을 초과하는 가구, ③가구원 중 금융소득 합계가 2,000만 원을 초과하는 사람이 있는 가구는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그 결과, ‘민생회복 소비쿠폰’이라는 포퓰리즘(Populism) 정책이 가계(家計) 형편을 드러내는 증표가 되어버렸다. 고액 자산가를 걸러내기 위한 소득 상위 10% 기준은 계층 낙인이 되었다. 한편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들은 ‘백만장자’이거나 ‘준백만장자’라고 볼 수 있다.   6.25전쟁이 휴전된 1953년에 1인당 국민소득(GNI)이 67달러였던 대한민국이 성장‧발전하여 2024년에 36,624달러를 기록했다. 2025년 현재는 ‘000의 이웃집 백만장자’라는 TV 프로그램까지 방영하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백만장자’를 소개하며 ‘이 시대의 진짜 부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진정한 부(富)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빈부 격차를 자극하는 면이 있으므로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전역하면서 정착한 성동구의 한 아파트에서 14년째 거주하고 있다. 지하철 3호선과 경의‧중앙선이 지나가는 옥수역을 자주 이용하는데, 지하철역 풍경 중에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승객들이 환승구역의 간이음식점 앞에 서서 김밥이나 어묵으로 한 끼 식사를 때우는 모습이다.   대한민국 경제‧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TV 프로그램 ‘이웃집 백만장자’와 지하철역의 ‘간이음식점 승객들’을 통해 느낀 소감,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다. ‘양극화(兩極化, Polarization)’는 부의 정규분포에서 중산층이 감소하고 사회계층이 양극단으로 몰리는 현상으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등 빈부 격차를 인정하는 모든 체제는 이 문제가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본격화했고, COVID-19 사태를 겪으면서 심화되어 심리적 내전을 초래한 상황이다. 따라서 어렵더라도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극복해야 지속가능한 나라가 될 텐데, 정부의 실질적인 정책과 구체적인 노력이 보이지 않으니 걱정이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소비 진작과 지역경제 회복을 노린 경기부양 정책으로, 단기 소비 촉진과 소상공인 매출 회복의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한시적 경기부양에 그치고, 물가 상승과 재정 부담 우려가 크다. 정부가 13조 원 이상의 재정을 생산적 투자가 아닌, 소비에 투입한 행위는 국가채무 증가를 감수한 정책으로 문제가 많다. 2025년 국가채무 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55%를 넘어섰는데, 이는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 지원이 절실한 취약계층에 집중 지원하고 재정을 절약했어야 했다. 포퓰리즘 정책으로 쇠락한 국가들의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진한 것은 졸렬한 방책이다. 특히 소득 상위 10%를 걸러내면서 계층 위화감을 조성하는 우(愚)를 범했다. 그리고 ‘현금 없는 백만장자들’ 사례에서 보듯, 현금 흐름(Cash-Flow)이 중요하다. 많은 금액이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현금이 가계로 들어와야 살아갈 수 있다. 어느 공적 연금 수급자가 연금이 통장에 들어오는 날에는 광화문의 정부종합청사를 향해 감사 인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는데, 요즘은 이해가 된다. 대부분 박봉(薄俸)에서 떼어 연금 기여금을 납부하던 시절에는 생활이 빠듯했지만, 지금은 국가가 현금 흐름을 보장해주고 있으니 ‘백만장자’ 부러워할 필요가 없고 감사할 일이다.  

이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내재적 국가안보사상을 우려한다

2025.10.29 조회수 147

  이 대통령의 위험천만한 내재적 국가안보사상을 우려한다   ○. ‘9.19남북군사합의 복원’의 국가군사안보전략사상을 규탄한다 금년 9월 19일에 좌파 종북정치꾼들이 한데 모여 희희낙락하며 파렴치하게도, 한국군 전투준비태세의 손발을 묶은 소위 ‘9.19남북군사합의’의 7주년이라며 기념잔치까지 열고, ‘9.19 원복’을 주장하였다. 이에 더하여 이 대통령도 같은 날, 다시 한번 ‘9.19군사합의정신 복원, 북체제 존중, 대화와 협력으로 한반도 평화정착 운운....’ 하였다. 소위 ‘9.19군사합의’란 종북 문재인 정권이, 알았던 몰랐던, 제2적화남침 준비를 완료하고 김정은의 명령만 기다리고 있는 북괴군에 대해, 이에 마주하여 방어태세에 있는 우리 전방 국군에게, 적군 감시도 경계도 사격도 방어훈련도 하지말라는, 실로 전대미문의 군사전략 역행적, 나아가 이적적일 수도 있는 행위였던 것이다. 더구나 경악스런 것은 현 합참의장(공군)이 2025 국정감사(10.140)에서, “9.19합의 복원은 상호 호혜적으로, 대비태세는 유지강구한다”라고 언급하며 존북정권 요구에 따르려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가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 조치 일환이라며 백마고지 유해발굴 재개’를 발표(10.15)하였는데, 이는 곧 ‘9.19’원복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는 안된다. 군대있고 훈련있으며 군대있고 경계와 정찰 있는 것이다. 아니라면 현 휴전선 대치선에서 상호 후방으로 철수하던지, 무장해제를 하던지 해야지, 바로된 정부가 바로잡아 놓은 것을 이제 다시 복원하겠다고 하는 언동은 대북 군사전략사상이 의심스럽거니와 비판받아 마땅한 것이다.   ○. ‘한국이 북한에 도발, 정차‧군사적 긴장 조성’한다는 존북안보전략사상을 규탄한다 9월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과거에 무력 침공이라도 할 것처럼 자극하고 무인기가 평양 상공을 돌아다니고 한 것을 몇 년 견뎠다” 했고, 경주 APEC을 앞둔 10월 23일에 CNN 인터뷰에서도 최근 북 미사일 발사 도발에 규탄은 고사하고 세계를 향해 “제가 보기에는 아주 오랫동안 (김정은이) 잘 참은 것 같다”고 했다. 마치 북은 남을 도발하거나 위협하지 않는 방어 체질인데 한국이 북에 무력도발하고 자극해 온 것처럼 언동하고 있다. 그래서 그 때문에 북이 방어를 위해 핵무기 개발하고, 어느 때든 선제 보복남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가 조성한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기에 북에 “쉐쉐”하며 호소하여 완화해야 한다는, 실로 종 존북적 심심 내재적 주장(사상)을 서슴없이 들어내고 있는 이(정권)에 대해 이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 국가반란(4.3, 여수순천)에 동조하는 반체제 혁명사상, 반국군사상을 개 탄한다 최근들어 일반상식의 정 반대되는 실로 망언같은 정치꾼들의 언동을 많이 본다. 심지어는 국군통수권자인 현직 대통령까지도 반국가질서, 반헌법, 반국군적 언동을 스스럼없이 자행하고 있다. 어떤 이는 5.18정신을 헌법에 올리겠다더니 드디어 이재명 국군통수권자(대통령)는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제주4.3반란사건을 진압하라는 국가와 군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행위’라고 ‘거짓말’(참전 장군의 증언)함으로서 당시 14연대 생존 장군을 분노하게 하였고, 조선일보 등 우국언론들로부터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 특히 퇴역군인들로부터는 계급 불문하고 울분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참으로 부당하고 부적절한 그의 국가안보사상을 의심하면서 개탄해 마지 않는다.   ○. 한미동맹 없애려는 자주국방, 전작권환수사상을 비판한다 전작권 환수하고 자주국방해야 한다. 물론이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 자주독립국가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더구나 현시점에서 지극히 신중을 기해야 할 안보문제다. 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문재인도 실패한 이 문제를, 왠지 모르나 정권 수립과 동시 임기내 완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하였고, 미국방문(9.8)에서는 트럼프에게 ‘안미경중 탈피, 한미동맹중시’를 강조하고 한미동맹 넘어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이라’ 확언했다. 그런데 국내에 돌아와서는, 유엔총회 출국을 앞두고(9.21), “외국군대 없으면 자주국방이 불가능한 것처럼 생각하는 일각의 굴종적 사고”라고 비판하는 한편, 예고된 중공 대만침공전쟁 때는 “말려들지 않겠다” 즉 한미동맹 이탈 가능성까지도 시사하였다. 그러면 주한미군의 철수를 동반하는 한미방위조약은 파기될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바로 호시탐탐 적화남침 준비를 완료한 북과 대만침공을 준비중(알려진)인 중공이 쌍수로 환영하는바 아니겠는가. 전작권 반환(환수)문제도 어느 시기에는 반듯이 해결되어야 할 국가 필수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배경이 되는 기본 국가안보전략사상이 문제다. 과거 김영삼과 김대중시대에 미국이 초기북핵 저지를 위해 북폭을 계획하자 이를 ‘민족의 동정심’ 보다 ‘북체제 동정심(?)’으로 말렸다. 노무현, 문재인 그리고 이재명 정권 또한 ‘가능한 북폭’을 소위 ‘민족의 이름’으로 저지하려는 전통을 유지하려는 심정, 합리적인 추정이 가능하다. 또한 여차하여 어떤 정당이나 단체가 자유체제정권을 전복탈취하기 위해 유사 촛불혁명이나 무슨 응원봉혁명을 감행할 때 군사력으로 진압당하지 않기 위해 전작권이 한국군에 있어야 안심된다는 생각, 그 추정 또한 가능하다. 북한이 지금도 적화남침을 위해 주한미군철수를 취해 우리 국민을 선동하고, 국군 정신무장을 해이시키기위해 프로파간다로 ‘전작권도 없는 군대는 괴뢰군’이라고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마치 이 말을 따르듯(합리적 추정), ‘그러기에 전작권 환수가 시급하다’는 언동을 여사로 하고 있다. 판단하건데, 외국군 즉 주한 미군의 철수는 한미연합사 해체를 의미하고, 그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운명을 달리한다는 것을 전제로한다. 현 국내외 안보정세하에, 특히 각종 국군개혁사업으로 지금 한창 지면편성과 부대구조 개편 그리고 이에 따른 전략전술 재수립중 – 아마도 이정권 내내 - 인 한국군이 한반도에 홀로 서서 북핵과 함께 남침준비가 완료된 괴뢰군은 물론 그 뒷배인 북삼각동맹군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한미일 세력 뒷받침없이 과연 ‘쉐쉐 외교안보전략전술’만으로 싸우지 않고도 이길수 있을까? 거듭 말하거니와 가능한 빨리 전작권 환수하고 자주국방 이루어야한다. 그런데 그 자주국방이 반듯이 한반도에 외국군 없는 즉 주한 미군철수를 전제로 해야만 되는 것인가? 대단히 의문스럽고 위험스런 국가안보전략사상으로 판단되기에 이를 우려해 마지않는다. ◎. 무너져가는 국군을 중흥시켜야 대한민국이 중흥한다 김영삼 대통령시절 여러면으로 국군을 학대하고 철모와 총칼을 목에 걸고 원수처럼 대함으로서 국군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이 ‘똥별들’, ‘미군 바지가랭이 붇들고’ 운운하면서 국군의 사기와 군기는 급전 직하하였다. 문재인 시대에 와서는 전방 병사들에게 돈주어 밖에 나가 놀게하고 핸드폰 허가하여 영내에서 도박판을 벌리는 정신빠진 군대가 되게 하고, 군법을 형골화하여 민간법원으로 끌어내 소위 ‘육사와 박대장 치명상 주기’를 여사로하고, 무슨 군인권단체를 만들어 국군을 한없이 좀먹었다. 이 정권에 들어와서는, ‘채상병순직수사’를 통해 사단장까지도 줄줄이 엮어넣었고, 심지어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 해병대 명령불복 대령에게 공개적으로 표창하는 등, 그 단결 좋았던 해병대를 분열시켜 귀신잡는 해병대를 종이호랑이로 만들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정예국군을 주도하는 핵심간부를 양성하는 국립군사사관학교 특히 육군사관학교를 없애겠다고 달려드는 정치꾼들을 가진 이 정권이 계속해서 혐군, 해군(害軍) 언동을 내뱉고 있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은 “똥별이라는 과한표현까지 쓰면서 국방비 많이 쓰는 나라, 외국군대 없으면 국방을 못한다는 식의 인식을 질타한 노무현 생각 나”라고. 그런데 그렇게 말한 노무현은 자주국방 달성했던가, 전작권과 자주국방문제는 별들의 문제 아닌 통수권자와 국회 즉 Civilian Control 책임인 것이다. 이 모두는 똥별군대를 지휘했던 똥통령다운 언동들이다. 그런가하면 10.1국군의날 기념식에서 무장한 경호대 호위를 받으며 국군을 사열하는 전대미문의 국군통수권자의 행태도 보였다. 김정은 10.5일 무장장비전시회를 공개하면서 “한국영토가 결코 안전한 곳으로 될 수 있겠는가, 특소자산을 중요관심표적들에 할당했다‘며 적화남침의사를 강도높게 표현하며 우리를 위협 협박하였다. 그런데 우리 이 대통령은 “아무리 비싼 평화도 전쟁보다 낫습니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않고 이기는 것이 낫고, 싸울 필요없는 평화가 가장 확실한 안보입니다” 라고 말하면서, 남북대화 제안과 함께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양측판단이 다르지민 대화를 통해 충분히 해결가능하다(10.23)” 고, 마치 북의 남침군사사상을 수용하여 언제든지 아군의 전략훈련을 취소/축소 가능하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정의의 힘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신념을 가진 우리는 이 헛되고 헛된 언동을 통탄해 마지않는다. 현시점 우리국군은 특히 연합훈련 안하는 군대(10.25 조선일보 사설), 기강 무너진 신교대훈련, 충실히 훈련시키면 처벌되는 군간부의 사기급냉과, 초급간부들의 줄 탈군현상, 때문애 각군 사관학교는 물론 초급간부학교도 지원자 확감, 심지어 ’전쟁나면 진다‘고 걱정하며 군대를 나가는 초급간부도 있다. 이제 국군은 ’밑바닥‘까지 무너져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종말을 고할 수는 없다. 6.25를 이겨내며 북진통일을 외치던 국군, 5.16군사혁명으로 국가를 중흥시킨 선진국군, 88서울올림픽 성공을 힘으로 뒷받침한 우리 국군은 이제 애국국민들에게 호소하여 그 힘으로 일어나 중흥하고 나아가 국가를 중흥시켜야한다. 그것이 현시점 우리 대한민국 국군의 소명 아니겠는가. 육사의 소명 아니겠는가. 2025년10월 하순, 한국국가안보전략사상사(학)연구회대표 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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