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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
2026.03.01 Views 46 이상돈
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사진 한 장
사진 한 장이 사람의 머리를 지배하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역사적인 현장과 사실을 증명하는데 사진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은 특종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전장으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내 기억의 서랍 속에 ‘나라가 망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던 사진 두 장이 있다. 하나는 정부 대변인(김성진 문공부장관)이 박정희 대통령 피격 서거(逝去)에 관해 발표하는 장면(1979)이고, 또 하나는 경제부총리(임창열)가 IMF 구제금융 요청을 발표하는 모습(1997)이다.
2021년 9월 1일 조간신문에서 흐릿한 사진 한 장을 보고 나는 놀랐다. 마음이 착잡했다. 한참 바라본 뒤 스크랩했다. 사진 제목은 ‘미국, 아프간서 마지막 발 떼는 순간’. 크리스 도나휴(Chris Donahue, 1969~) 미국 육군 82공정사단장이 단독군장으로 카불(Kabul) 공항에서 수송기(C-17)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전속부관이나 참모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권총이 아닌 삽탄된 소총을 오른손으로 잡고 수송기 트랩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미국 중부사령부가 'The last American Soldier to leave Afghanistan'이라며 공개한 사진이었다.
탈레반(Taliban, 학생들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의 위협 속에 철군하는 상황에서, 공항을 점검한 뒤 마지막으로 수송기에 탑승하는 사단장의 지휘관다운 모습을 기내에 있던 한 부사관이 야간투시경으로 찍었다고 한다. 흐릿한 사진을 살펴보는 동안, 베트남 전쟁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인 'We were Soldiers(2002)'에서 미군 대대장이 “내 뒤에 누구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말과 모습이 떠올랐다.
중앙아시아의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영국과 세 차례의 전쟁을 거쳐 1919년에 독립했다. 1973년에 군사쿠데타로 226년 동안의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1979년에 소련군이 공산정권을 세우기 위해 침략했다가 실패하고 1989년에 철군한 역사가 있다.
무장 파벌세력간의 내전에서 1996년에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는데, 그들은 모든 점령지역에서 엄격한 이슬람식 사회질서를 강요했다. 미국이 지원한 과도정부 수립에 이어 2004년에 아프가니스탄이슬람공화국이 들어섰으나, 무능과 부정부패로 2021년 8월 15일에 붕괴되었다. 8월 31일에 미군이 철군했다. 이어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이슬람토후국을 재건했으나,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지 못한 상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테러 후 2001년에 미국이 탈레반의 알카에다(Al-Qaeda, 1988년에 설립된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 2011년에 사살된 빈 라덴이 수장) 지원 의혹으로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동의부대(의료지원단, 2001.12~2007.12)를 필두로 다산부대(건설공병단, 2003.2~2007.12)와 오쉬노부대(재건지원단, 2010.5~2014.6)를 파병했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동안 지속되었던,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성공하지 못하고 미군이 카불 공항에서 철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약 2조 2,610억 달러(약 3,165조 원)의 전쟁비용을 지출했다. 아프가니스탄 군인 약 6만 5,000명, 민간인 약 7만 8,000명이 사망했고, 미국‧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도 3,575명이 전사했다(미군 2,448명 포함). 막대한 재정 지출과 큰 희생이 있었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축출하지 못했고, 전쟁성과가 없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을 마지막으로 떠났던 미군, 육사 출신의 크리스 도나휴 82공정사단장은 18공정군단장을 거쳐 2024년 12월에 대장으로 진급해 현재 유럽-아프리카 육군사령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의 아프가니스탄 인연은 육본 군수참모부 계획운영과장(대령) 시절에 시작되어 전역(2012) 때까지 유지되었다. 2001년 12월에 동의부대를 창설하고 2002년 2월에 파병할 때 군수지원 업무를 총괄했다. 지원계획 수립 시부터 상황이 불명확해 어려움이 많았다. 합동정찰을 다녀온 실무자가 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사진처럼 흐릿한 바그람(Bagram, 카불 인접, 미군 사령부 주둔) 공군기지의 외곽 사진만 가지고 복귀하는 등 정보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과원들이 사명감으로 야근을 하며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동의부대를 이상 없이 바그람 공군기지에 투사할 수 있었다.
2004년 11월, 육본 군수기획처장(준장)으로 근무할 때 현지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동의부대와 다산부대에 필요한 군수품을 수송하고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출장을 갔다. 외국 전세기를 타고 야간에 아프가니스탄 상공에 다다랐을 때 적대세력의 대공무기 위협에 직면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인솔책임자였던 나는 바그람 공군기지 대신에 인접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Manas) 공항으로 기수(機首)를 돌리는 결심을 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마나스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으며, 다음 날 주간에 바그람 공군기지로 가서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했다. 당시 절박한 순간에 고생이 많았던 K예비역 장군과 후배장교 2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05년 말~2006년 초, K참모총장의 해외파병부대 순시를 수행하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임무 종료 후에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의 시누크(C-47) 헬기에 탑승했는데, 고장으로 이륙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정비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귀국길에 올랐다.
5년 전에 스크랩했던 신문 사진은 ①나의 전우들과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무런 전쟁성과 없이 미군이 철군한 사실에 대한 회한, ②적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단장이 끝까지 남아 임무를 완수하고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모습을 통한 교훈을 주었다. 이에 36년간 군 생활했던 나는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평화협정은 외교 문서일 뿐, 안보를 담보하지 못한다. 미국과 남북 베트남 간의 파리 평화협정(1973), 미국과 탈레반 간의 도하 평화협정(2020)이 이를 역사로 증명한다. 안보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에 소홀하고 평화협정 타령만 하면, 한국도 그들처럼 몰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지휘관들은 상황이 급하더라도 METT-TC 요소를 적용하여 냉철하게 임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작전 행정이 아닌, 작전을 해야 된다. 무엇보다 미군 82공정사단장이 본을 보인 것처럼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실천하지 않으면, 올바른 지휘통솔이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고급장교들은 전략적 사고와 전술적 훈련에 충실해야 한다. 전쟁지속능력도 확충해야 한다. 북핵 위협 가시화와 병력자원 부족 상황에서 전쟁사와 현대전 양상을 반영한 전략‧전술을 발전시키고 숙달하지 않으면, 그리고 전쟁지속능력이 부족하면, 전승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진 한 장이 사람의 머리를 지배하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역사적인 현장과 사실을 증명하는데 사진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그래서 사진기자들은 특종 사진 한 장을 건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위험한 전장으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간다.
내 기억의 서랍 속에 ‘나라가 망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하게 만들었던 사진 두 장이 있다. 하나는 정부 대변인(김성진 문공부장관)이 박정희 대통령 피격 서거(逝去)에 관해 발표하는 장면(1979)이고, 또 하나는 경제부총리(임창열)가 IMF 구제금융 요청을 발표하는 모습(1997)이다.
2021년 9월 1일 조간신문에서 흐릿한 사진 한 장을 보고 나는 놀랐다. 마음이 착잡했다. 한참 바라본 뒤 스크랩했다. 사진 제목은 ‘미국, 아프간서 마지막 발 떼는 순간’. 크리스 도나휴(Chris Donahue, 1969~) 미국 육군 82공정사단장이 단독군장으로 카불(Kabul) 공항에서 수송기(C-17)에 오르는 모습이었다. 전속부관이나 참모를 대동하지 않고 혼자, 권총이 아닌 삽탄된 소총을 오른손으로 잡고 수송기 트랩에 발을 내딛는 순간을 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사진이다. 미국 중부사령부가 'The last American Soldier to leave Afghanistan'이라며 공개한 사진이었다.
탈레반(Taliban, 학생들을 뜻하는 페르시아어)의 위협 속에 철군하는 상황에서, 공항을 점검한 뒤 마지막으로 수송기에 탑승하는 사단장의 지휘관다운 모습을 기내에 있던 한 부사관이 야간투시경으로 찍었다고 한다. 흐릿한 사진을 살펴보는 동안, 베트남 전쟁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인 'We were Soldiers(2002)'에서 미군 대대장이 “내 뒤에 누구도 홀로 남겨두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말과 모습이 떠올랐다.
중앙아시아의 교통요충지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이후 이 지역을 지배하던 영국과 세 차례의 전쟁을 거쳐 1919년에 독립했다. 1973년에 군사쿠데타로 226년 동안의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리고 1979년에 소련군이 공산정권을 세우기 위해 침략했다가 실패하고 1989년에 철군한 역사가 있다.
무장 파벌세력간의 내전에서 1996년에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는데, 그들은 모든 점령지역에서 엄격한 이슬람식 사회질서를 강요했다. 미국이 지원한 과도정부 수립에 이어 2004년에 아프가니스탄이슬람공화국이 들어섰으나, 무능과 부정부패로 2021년 8월 15일에 붕괴되었다. 8월 31일에 미군이 철군했다. 이어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이슬람토후국을 재건했으나, 국제사회에서 공인받지 못한 상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9.11테러 후 2001년에 미국이 탈레반의 알카에다(Al-Qaeda, 1988년에 설립된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조직, 2011년에 사살된 빈 라덴이 수장) 지원 의혹으로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동의부대(의료지원단, 2001.12~2007.12)를 필두로 다산부대(건설공병단, 2003.2~2007.12)와 오쉬노부대(재건지원단, 2010.5~2014.6)를 파병했다.
2001년부터 2021년까지 20년 동안 지속되었던,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은 성공하지 못하고 미군이 카불 공항에서 철군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약 2조 2,610억 달러(약 3,165조 원)의 전쟁비용을 지출했다. 아프가니스탄 군인 약 6만 5,000명, 민간인 약 7만 8,000명이 사망했고, 미국‧영국‧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연합군도 3,575명이 전사했다(미군 2,448명 포함). 막대한 재정 지출과 큰 희생이 있었지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축출하지 못했고, 전쟁성과가 없었다. 한편 아프가니스탄을 마지막으로 떠났던 미군, 육사 출신의 크리스 도나휴 82공정사단장은 18공정군단장을 거쳐 2024년 12월에 대장으로 진급해 현재 유럽-아프리카 육군사령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나의 아프가니스탄 인연은 육본 군수참모부 계획운영과장(대령) 시절에 시작되어 전역(2012) 때까지 유지되었다. 2001년 12월에 동의부대를 창설하고 2002년 2월에 파병할 때 군수지원 업무를 총괄했다. 지원계획 수립 시부터 상황이 불명확해 어려움이 많았다. 합동정찰을 다녀온 실무자가 야간투시경으로 찍은 사진처럼 흐릿한 바그람(Bagram, 카불 인접, 미군 사령부 주둔) 공군기지의 외곽 사진만 가지고 복귀하는 등 정보도 제한되었다. 그러나 과원들이 사명감으로 야근을 하며 열정적으로 업무를 수행해 동의부대를 이상 없이 바그람 공군기지에 투사할 수 있었다.
2004년 11월, 육본 군수기획처장(준장)으로 근무할 때 현지에서 임무 수행 중이던 동의부대와 다산부대에 필요한 군수품을 수송하고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출장을 갔다. 외국 전세기를 타고 야간에 아프가니스탄 상공에 다다랐을 때 적대세력의 대공무기 위협에 직면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인솔책임자였던 나는 바그람 공군기지 대신에 인접국가인 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Manas) 공항으로 기수(機首)를 돌리는 결심을 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마나스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으며, 다음 날 주간에 바그람 공군기지로 가서 임무를 완수하고 귀국했다. 당시 절박한 순간에 고생이 많았던 K예비역 장군과 후배장교 2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05년 말~2006년 초, K참모총장의 해외파병부대 순시를 수행하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갔다. 임무 종료 후에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의 시누크(C-47) 헬기에 탑승했는데, 고장으로 이륙하지 못하는 돌발상황이 발생했다. 정비가 끝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귀국길에 올랐다.
5년 전에 스크랩했던 신문 사진은 ①나의 전우들과 내가 위험을 무릅쓰고 임무를 수행했던 아프가니스탄에서 아무런 전쟁성과 없이 미군이 철군한 사실에 대한 회한, ②적의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사단장이 끝까지 남아 임무를 완수하고 마지막으로 철수하는 모습을 통한 교훈을 주었다. 이에 36년간 군 생활했던 나는 다음 사항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평화협정은 외교 문서일 뿐, 안보를 담보하지 못한다. 미국과 남북 베트남 간의 파리 평화협정(1973), 미국과 탈레반 간의 도하 평화협정(2020)이 이를 역사로 증명한다. 안보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에 소홀하고 평화협정 타령만 하면, 한국도 그들처럼 몰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지휘관들은 상황이 급하더라도 METT-TC 요소를 적용하여 냉철하게 임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작전 행정이 아닌, 작전을 해야 된다. 무엇보다 미군 82공정사단장이 본을 보인 것처럼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실천하지 않으면, 올바른 지휘통솔이 되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고급장교들은 전략적 사고와 전술적 훈련에 충실해야 한다. 전쟁지속능력도 확충해야 한다. 북핵 위협 가시화와 병력자원 부족 상황에서 전쟁사와 현대전 양상을 반영한 전략‧전술을 발전시키고 숙달하지 않으면, 그리고 전쟁지속능력이 부족하면, 전승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