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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자유지 권두언] 오월, 부모님을 생각한다.

2016.05.04 Views 2251 관리자

오월, 부모님을 생각한다.

 

민병돈 육군사관학교장

 

유교국가 조선국 세종10(서기 1428) 경상도 진주에서 김화(金禾)라는 자가 아비를 때려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보고 받은 임금이 어전회의에서 크게 탄식하며 신하들에게 분부했다, 교육을 통하여 무지한 백성을 순화해야 하니 속히 책을 발간하여 배포하도록 하라고. 이에 신하들이 아뢰었다, “백성들이 글을 몰라 책을 읽을 수 없으니 책을 나누어 줘도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임금은, 그러면 글 모르는 백성들도 보고 감동받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려서 배포하라고 분부했다. 이렇게 해서 화원(畵員)들이 효자도(孝子圖)를 그렸고 이 그림들이 효 교육을 위한 교재로 널리 배포되었다. 요즈음도 국립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병풍그림들에서 효자도를 볼 수 있는데 조선 세종조에서 비롯 된 것들이다.

 

삼국유사 제5권 제9장 효선(孝善)에 손순매아(孫順埋兒)라는 제하에 효행 이야기가 나온다. 경주에 살고 있는 가난한 효자 손순 부부가 늙은 어머니에게 정성껏 마련한 밥상을 차려 드렸는데 그 부부의 어린 자식이 할머니 무릎에 앉아서 그 음식을 계속 받아 먹는 것을 보고는 어머니의 영양부족을 염려하여 부부가 의논해 그들의 철부지 어린 자식을 뒷산에 묻어 버리기로 합의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믿을 수 없는 효행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더 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효행의 모범 사례로 역사책에 까지 써 넣었을까.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시대의 열악한 생존환경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제대로 봉양(奉養)하지 못했거나 봉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효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효도하지 않는가?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이다. 동물학에서의 분류에 따르면 인간은 척추동물문()-포유강()-영장목()-사람과()의 동물이다. 그러므로 인간도 다른 모든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자식을 사랑한다. 이는 본능이다. 그러나 새끼(자식)들은 성장한 후에 아비·어미에게 효도하지 않는다. 효도는 자연스러운 것,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 학습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동물의 성장과정에서는 생존 요령을 배울 뿐 효행은 배우지도, 요구받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유일한 예외가 인간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자식들에게 효도를 가르치고 이를 요구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효()교육에서 기대하는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 인간의 본성이 원초적으로 자기중심적(ego-centric)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른들이 효도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세상이 말세(末世)라고 한탄한다. 그런데 그 어른들의 아버지들도 그들의 시대를 말세라고 한탄하는 것을 어려서 들은 바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시대에도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말세이며 인간은 늘 그러한 말세속에서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도덕의 강조는 그 사회가 도덕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금 한탄하고 있는 어른들은 한번쯤 스스로 자문(自問)해 보아야 한다. 나는 나의 부모님께 효도했는가?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가슴이 뜨끔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가 바로 불효자(不孝子)아닌가? 부끄럽다. 그러면서 나는 자식들의 효도를 받고 싶어 했으니. 또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가 불효자이다. 그리고 지금은 효교육 조차 실종한 상태이다. 어찌할 것인가? 이제부터라도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기만 하다. 부모에 대한 패륜적인 범죄가 매스컴에서 연일 방송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할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급기야 정부에서는 <불효자 방지법>이라는 법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제는 자식이 부모에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할 시는 자식에게 이미 물려준 재산에 대해서도 반환 요구가 가능하다는 법이다. 부모자식간의 사적인 영역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효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배우는 것이다. 효는 어린 아이가 부모의 효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고 행동으로 익히는 것이다. 선망적 동일시를 통하여 얻는 교육 효과이다. 옛날 어른들의 효자의 집안에서 효자 난다는 말씀이나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씀은 진리이다. 그러므로 자식의 효도를 받고자 한다면 먼저 나 자신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모습을 자식들이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모범을 보여야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의 삶의 형태도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면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자식들을 부모가 직접 키우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유아원이나 할머니 또는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지고 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효를 말하고 보여주기엔 시간이 부족하고 삶의 여유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사회문제가 나의 노후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함께 틈틈이 부모님을 찾아뵙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자. 아이들에게도 좋은 인성교육의 현장이 될 뿐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도 당연히 좋아질 수밖에 없다. 정말 바빠서 자주 갈 수 없다면 문명의 이기를 적극 활용해 보자. 영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감정을 현실처럼 전달할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가. 자식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이 곧 부모에게는 크나큰 기쁨이요 효도다.

 

언젠가는 지금의 부모님 자리에 우리가 이르게 된다. 자식과의 원활한 관계만큼 중요한 노후대책이 없다. 자신의 노후대책의 한방편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가정의 달 오월을 맞이해서 다시 한 번 효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부모님만 위한 효가 아닌 바로 나를 위한 효가 되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즐겁고 아이들이 좋아한다면 내맘도 즐겁다. 그렇게 사랑하고 보고 싶어 하는 손자, 손녀를 앞세워서 부모님 댁으로 몰려가자. 푸른 오월처럼 함박웃음으로 맞이하는 보모님과 함께 가족 모두가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오월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부모는 자식이 성공해서 크게 효도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는다.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조그만 마음의 선물을 보내자.

나무는 고요히 서 있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효도하고자 하나 부모는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으신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고전의 가르침은 참으로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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