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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호 자유지 안보논단] 국가 안보 백년대계 서둘러야 한다.
2015.12.02 Views 2059 관리자
국가안보 백년대계(百年大計) 서둘러야 한다.
윤상호(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
“이래서야 국가안보의 백년대계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군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의 대응태세를 이같이 평가했다. 북한이 머지않아 소형 핵탄두를 개발해 탄도미사일에 실어 배치할 것이라는 군 안팎의 우려를 두고 하는 얘기였다.
그는 북한이 2, 3년 안으로 핵탄두를 탑재한 노동과 스커드미사일을 전력화해 서울을 비롯한 한반도 전역을 조준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개발도 시간문제라고 그는 예견했다. 핵미사일을 실은 잠수함은 ‘최종 핵병기’로 불린다. 수중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잠수함의 핵공격은 사전 탐지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2020년대 초를 목표로 구축하고 있는 ‘킬 체인(Kill Chain·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를 탐지, 추적, 타격하는 시스템)’으로도 대응하기 힘들다.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로도 완벽한 요격을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의 핵위협이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지만 뾰족한 전략과 방책이 없는 현 안보상황이 안타깝다고 그는 토로했다.
한반도의 안보시계가 이처럼 불투명해진데는 지난 20년간 북한의 핵위협을 과소평가하고 금쪽같은 대응시간을 허비한 탓이 크다. 실제로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살라미 전술(끊임없는 요구의 반복)’과 속빈 협상으로 시간을 질질 끌면서 핵개발에 전력을 투구하는 동안 우리의 대응은 미흡하기만 했다.
과거 정권은 북한의 핵은 체제유지를 위한 대미(對美) 협상수단일 뿐 같은 민족을 겨눈 게 아니라는 오판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핵은 자위용’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면서 맞장구를 치는 정치 지도자까지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주변 4강의 외교적 해결에만 기댄 채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도 세우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북핵위기를 수수방관한 정부와 군의 책임도 클 수 밖에 없다.
북핵위협에 대한 오판은 ‘안보실정(失政)’으로 이어졌다. 북한이 사거리와 정확도를 개량한 탄도미사일을 잇달아 실전배치하고, 여러 차례 핵실험까지 감행했지만 한국은 초보적인 방어수단조차 강구하지 않았다.
2000년대 초 대북요격체계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경고가 있었지만 정부와 군은 미적거렸다.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 편입 논란과 주변국을 자극한다는 이유를 들어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없는 중고 미사일을 1조원이나 주고 들여온 게 전부다. 북한의 핵위협은 날로 가중되는데 한국의 안보태세는 구멍이 숭숭 난 빗장을 세우는데 그친 셈이다.
북핵위협에 대한 부실한 대응태세는 국방예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1990년대 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전까지 연평균 10% 이상을 유지하던 국방예산 증가율은 2000년대 후반 8%대로 주춤한 뒤 2012년부터는 5% 아래로 떨어졌다.
최근 5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예산 비율은 2.5%로 세계 22개 주요 분쟁대치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국방예산은 총액면에서도 주변국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 일본이 앞다퉈 국방예산을 증액하면서 한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복지와 민생 예산에 밀려 정부 재정의 국방예산 비율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최근 3년간 신규 무기 도입을 위한 방위력 개선비의 증가율은 2%대에 불과하다.
이로 인한 국방중기계획의 전력증강 예산 차질액은 3조40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국방투자로는 북핵위협에 대비할 수 있는 핵심전력을 제때 확보하기 힘들다. 병력 감축과 첨단무기 도입을 통한 정예강군 육성과 국방개혁이 구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군 안팎에서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그 우려가 올해부터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방부가 올 2월초 국방위원회 소속 백군기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국방중기계획’의 요구 제원은 96조원이다. 이는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방위력 개선예산 66조원을 30조원이나 초과하는 금액이다.
국방예산의 부족은 주요 전력증강사업의 차질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이미 예견됐던 결과라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대규모 전력증강사업들이 본격적으로 추진되면서 2016∼2020년에 소요될 예산이 크게 늘면서 국가재정운용계획과의 괴리가 더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커졌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차기전투기(FX) 사업(7조3000억 원)을 비롯해 한국형전투기(KFX) 사업(8조6000억 원), 차기다연장로켓(3조 5000억 원), 차기이지스함(3조원) 등 각 군의 대형무기도입사업이 줄줄이 시작됐다. 아울러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구축사업도 2020년대 초중반을 목표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됐다. 두 사업에는 10조원 안팎의 예산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군사정찰위성 5기와 고고도 무인정찰기(UAV), 패트리엇(PAC-3) 미사일 도입 등에도 17조원의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하지만 국방예산은 몇 년째 사실상 ‘정체(停滯)상태’가 되면서 무기도입 등 전력증강사업이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미 계약이 체결된 사업도 연부액(연도별로 업체에 지급하는 금액)이 조정되면서 도입 및 실전배치 시기가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주요 무기의 전력화가 줄줄이 지체될 경우 안보공백의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군 관계자는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맞춰 국방중기계획을 짜려면 주요 사업 중 많은 분야가 연기되거나 사실상 취소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과거 정부부터 엄중한 안보현실을 도외시하면서 국방예산을 홀대한 게 주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국방예산도 ‘역주행’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주변국과 역내 안보상황을 보면 이 같은 지적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중국과 일본간 영토분쟁과 일본의 역사재인식 및 군국주의화 등 패권 회복정책 등이 겹치면서 동아시아의 안보정세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실제로 2013년 11월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갈수록 충돌 수위가 높아지는 중일간 센카쿠 영토 분쟁은 ‘살얼음판’을 걷는 역내 정세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신형 대국관계’와 ‘적극적 평화주의’를 각각 내건 중일간 역내 패권경쟁이 자칫 군사력을 앞세운 무력충돌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방위예산을 책정하고, 공격용 무기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특히 미국 해병대가 도서 상륙작전에 사용하는 V-22 오스프리의 도입을 결정하는 한편 해병대 창설과 수륙장갑차를 탑재할 수 있는 강습상륙함 도입검토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중장기적으로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추가 건조해 서태평양의 제해권을 확보하는 등 대응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이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전승절 열병식에서 핵을 탑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최첨단 전투기 등 군사력을 한껏 과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중일 양국의 갈등이 격화될수록 한국의 안보상황도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요충지인 한국이 힘을 기르지 않는다면 열강의 각축장이자 패권경쟁의 ‘전리품’으로 전락한다는 아픈 역사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중국 대륙의 명청 패권교체기 청나라는 조선을 상대로 두 차례의 침공을 강행했고, 근대 들어 청나라와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잇달아 터졌다. 이 같은 역내 패권경쟁의 최대 희생자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 일제 36년 식민치하의 굴욕을 당한 조선이었다. 과거의 교훈을 망각하면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국방력 건설은 국가의 존재이유이자 핵심책무다. 피의 숙청과 광기로 얼룩진 30대 초반의 독재자가 핵공격을 협박하는 초유의 안보위기를 헤쳐가려면 충분한 국방투자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군도 주먹구구식 전력증강 정책의 혁파 등 대변신을 해야 한다. 북한의 비대칭위협은 날로 고조되는데 ‘자군 이기주의’를 앞세운 구태의연한 전력증강 정책을 고할 건가. 이렇게 해선 국방예산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예산의 선택과 집중적 투자를 통해 군의 합동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북한의 핵위협을 무력화할수 있는 전략과 방도를 찾는 데 군 수뇌부는 직을 걸어야 한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안보 골든타임’을 더 이상 허비해선 안 된다. 이 시기를 놓칠 경우 몇 년 뒤 국방백서는 이렇게 기술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마침내 소형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독자적인 방어수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