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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호 자유지 안보논단] 한중정상회담, 성과와 과제
2015.10.15 Views 2039 관리자
한중정상회담, 성과와 과제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지난 9월 3일 중국의 전승기념 열병식은 전세계의 관심 속에 막을 내렸다. 열병식 전후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력은 단연 돋보였다. 2일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특별오찬을 함께 했다. 관시를 중시하는 중국의 외교적 형태에서 양정상의 신뢰는 더욱 탄탄해 보였다. 3일 열병식 내내 박근혜 대통령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나란히 함으로써 동북아지역에서 한국의 위상을 과시했다.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한중비즈니스포럼은 양국의 경제협력을 한단계 도약시킬 계기점이 됐다. 한중간 인적교류는 1,000만명 시대가 도래했고, 교역액은 3,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경제적으로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의 빠른 속도를 예고한다.
기념식에 참석한 북한의 위상
북한은 열병식에 특사도 아닌 사절단을 파견했다. 사절단장 최룡해의 파견은 불편한 북중관계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막가파식 행동에 심기가 불편하다. 북한은 시진핑 주석의 등극에 맞춰 2012년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와 2013년 핵실험을 단행했다. 2013년 말 북중간 창구역할을 한 장성택의 처형은 중국 지도부의 심기를 자극했다. 북한은 중국 지도부가 김정은 제1위원장을 어린애 취급하고 있음에 불만이다. 체제생존을 위한 핵과 미사일 실험을 어린애 불장난으로 본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것도 불만이다. 최룡해를 사절단장으로 지명한 것은 2013년 특사로써 시진핑 주석을 만난 경험이 있고, 부친인 최현이 항일무장투쟁을 한 것이 고려된 듯하다. 북한 사절단장 최룡해는 먼발치서 열병식을 축하했다. 휴전협정 직후인 1954년 마오쩌둥과 김일성 주석이 어께를 나란히 한 열병식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은 지난 5월 9일 러시아 전승기념 열병식에는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파견했다. 김상임위원장은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김영남 상무위원보다 격이 낮은 최룡해 정치국 위원을 파견한 것은 중국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보인다. 북한은 대외관계의 1순위로 러시아, 2순위로 중국을 정한 듯하다. 최룡해 단장은 열병식이 끝나자 마자 귀국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중국에서 열병식이 열리는 시점에 신의주에 있는 군수공장 측정계기공장을 현지지도 한 것으로 열려졌다. 열병식에 대한 의도적인 외면으로 읽힌다. 어쩌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선군지도자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해 오는 10월 10일 당창건 70주년에 중국보다 더 규모가 크고 화려한 열병식을 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도 있다.
한중 정상회담 내용
9월 2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을 가졌다. 정상회담은 여섯 번째였다. 양정상은 한중관계, 한반도 정세, 동북아지역 및 국제정세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한중관계와 관련하여 양국관계가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상호 협력하고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인문유대강화사업과 문화컨텐츠 공동개발에 협력하기로 했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하여 8.25 남북합의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행되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속화되기를 희망했다. 전략적 협력동반자로써 한반도·동북아·국제문제에 대해 협의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9.19 공동성명과 유엔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강조했다. 긴장을 고조시키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한반도 비핵화 목표를 확고히 견지하면서 의미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에 의견을 같이 했다. 중국은 장래에 한민족에 의한 평화통일을 지지했다. 10월 말이나 11월 초 한중일 정상회의를 개최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시진핑 주석은 한국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지지를 재확인 했다.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의 실행에 있어 상호 연계 가능성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했다.
북핵문제와 6자회담
이번 한중정상회담은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논의했다. 양국이 공감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잘 이행한다면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공감하지만 이행이 쉽지 않은 사안도 있다. 바로 북핵문제이다. 북핵문제는 남북한의 문제이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2008년 6자회담이 중단된 이후 지난 7년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됐다. 북한이 오는 10월 10일 당창건 70주년을 전후해서 핵탄두를 운반하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다면 한반도의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한중 정상이 의견을 같이한 의미있는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는 쉽지 않을 듯하다. 북한은 조건없는 6자회담을 주장하고 미국은 조건있는 6자회담을 강조한다.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은 엄격하다. 북한이 먼저 인공위성을 포함한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 중단을 선언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영변핵단지 복귀, 영변핵단지 이외의 의심가는 지역까지 사찰을 받겠다고 약속하라는 것이다. 북한은 조건없는 6자회담을 하든지, 핵실험과 한미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할 것을 제안한다. 중국도 북한의 입장을 고려하여 북미간 안보우려사항을 동시에 논의해야 함을 역설한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은 단호하다. 북한의 핵실험은 유엔안보리 결의위반이고 한미군사훈련은 방어훈련으로써 북한과 협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은 6자회담 의장국으로써 엄격한 조건이 아니라 완화된 조건으로 6자회담 재개를 추진했다. 그러나 관련국 모두가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음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도 조건충족과 관계없이 일종의 ‘탐색적 대화’로써 비공식 6자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나 참가국들의 소극적인 반응과 북한의 불호응으로 제안단계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2005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9.19 공동성명은 한국의 창의적인 노력에 의해 채택됐다. 남북간에 대화의 틀이 있었기에 한국이 북한과 미국을 설득할 수 있었다. 지금은 남북간에 의미있는 대화의 틀도 없다. 북중관계도 좋지 않기 때문에 의장국 중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미국은 ‘전략적 인내정책’에 의해 북한의 비핵화 보다 비확산에 관심이 많다. 일본은 북한의 비핵화보다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이 우선적이다. 경험적 사례에 비춰보면, 남북관계와 북중관계가 원만한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이 미국과 북한을 설득해서 6자회담을 지속해 왔다. 그러나 2008년부터 남북관계의 악화와 2013년부터 북중관계의 악화는 6자회담 중단의 장기화를 이끌었다. 과거 6자회담의 합의과정은 북미간에 접점을 찾아 6자회담에서 추인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북한의 비핵화 전략은 대북제재와 압박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미일 공조도 대북제재에 있었고 한중협력도 대북압박에 치중했다. 5.24 조치와 금강산관광 중단도 북핵문제와 연계를 가진 독자제재로 변화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능력은 고도화되었다. 북한은 멀지 않아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을 예고하고 있다. 로켓과 핵실험은 중국과 미국의 힘으로만 막을 수 있다. 그 힘은 압박과 제재의 힘이 아니라 대화와 협력의 힘이다. 한국은 북중관계 복원과 북미대화 재개를 위한 배가의 노력이 요구된다.
통일의 과정
박근혜 대통령은 한중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통일문제에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음을 수차례 강조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통일밖에 없다고 했다. 대화도 압박도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모습이다. 물론 비핵화와 통일을 연계한 것은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통일문제는 비핵화보다 더 복잡하고 민감하다. 중국은 한민족에 의한 평화통일을 지지한다. 주한미군 배제에 의한 한민족의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주한미군과 함께하는 평화통일을 원한다. 통일의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둘러싸고 한중간에 충돌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통일방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다. 남북화해협력, 남북연합, 사실상의 통일 등 3단계 통일방안이다. 중국과의 통일논의 이전에 남북간의 화해협력이 우선임을 보여준다. 분단 70년을 되돌아 보면 ‘통일얘기’가 많을수록 통일이 점점 멀어졌음을 상기해야 한다. 중국은 공산국가이다. 열병식 동안 한국에게 많은 웃음과 호의를 배풀었다. 역사적 교훈은 공산국가의 웃음과 호의 뒤에 감춰진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