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현안

자료실

10월호 자유지 안보논단] MIU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선진국의 척도

2015.10.15 Views 2406 관리자

MIU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선진국의 척도

 

윤상호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

7월 중순 미국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워싱턴(BWI) 국제공항.

여행객들로 붐비는 공항 청사 안으로 제복 차림의 상이군인들이 탄 휠체어가 하나둘 들어섰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부상을 당한 노병들이었다.

가슴마다 무공훈장을 단 참전용사들의 표정에선 강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미는 휠체어가 청사 로비를 통과하자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큰 박수로 환영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여행객들도 모두 일어서서 동참했다. 박수 세례는 참전용사들이 가벼운 목례를 하며 탑승구로 사라질 때까지 계속됐다.

미국 생활 27년째인 한 교포가 최근 필자에게 보낸 e메일의 내용이다. 그는 쇼핑몰이나 백화점에서도 상이군인을 보면 감사를 전하는 남녀노소 시민들을 미국에선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의 얘기를 듣고 우리는 어떤가 하고 곱씹어봤다. 군인을 비롯해 `제복을 입은 대원들(MIU·Men in Uniform)`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비하가 남아있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런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TV와 신문에서는 경찰관이나 119 구급대원이 취객이나 환자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봉변을 당했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국가안보와 시민안전을 위해 몸을 던지는 MIU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존경과 배려심이 아직 부족하다는 얘기다.

군복과 군인을 비하하는 분위기도 문제다. 육군 이모 중위는 최근 거리를 지나다 입술을 깨물었다. 군복 차림의 자신을 보고 군바리라고 부르며 키득거리는 고교생들과 마주쳤기 때문.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자긍심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지는 순간이었다. 심한 모욕감에 맞대응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그는 토로했다.

대표적인 군 비하 용어인 군바리의 사전적인 의미는 군인(군대에서 복무하는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이다. 그 유래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 누리꾼들은 군바리의 어원에 대해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일본어 시다바리가 우리나라에서 하수인의 의미로 쓰이면서 군인과 시다바리를 합성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또 몸이 작고 다리가 짧은 애완견을 통칭하는 발바리와 결합해 나라 지키는 개라는 의미로 군바리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고는 설도 있다.

 군바리같은 단어는 군사정권 등 역사적으로 좋지 않은 기억이 군인을 통틀어 얕잡아 부르는 언어생활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고위층의 병역비리, 철저한 상명하복속에 부조리를 참아야 하는 군대문화 등 군과 관련한 나쁜 이미지가 일반인의 언어에까지 투영됐다는 얘기다.

문제는 일부 군 장병들조차 군바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2012년 국방부는 군바리를 포함해 개목걸이(인식표)’, ‘병아리(신병)’ 등 비속어를 사용하는 장병에게 강등, 근신, 휴가 제한, 영창 등 징계 처분을 내리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MIU에 대한 존경은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군인과 경찰, 소방관 등 MIU의 직업적 특성을 소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 가운데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때 산화한 장병들을 다룬 교과서는 3종에 불과한 실정이다.

 국민이 국가에 헌신한 MIU를 기릴 수 있는 여건도 미흡하다. 전국 50여 개 국가보훈처 지정 기념관 가운데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을 제외한 나머지 시설은 관람객의 발길이 뜸하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6·25전쟁 등 나라에 목숨을 바친 영웅들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불꽃건립사업도 4년 넘게 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미국은 어떤가. 군인과 경찰관, 소방관 등 MIU는 가장 존경하는 직업 10위 안에 항상 들어간다. MIU에 대한 국민적 믿음과 자부심이 그만큼 두텁다는 얘기다. 미군 최고 영예인 명예훈장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직접 수여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델라웨어 주 미 공군기지로 달려가 귀환하는 미군 전사자들을 거수경례로 맞이해 전 세계에 감동을 안겼다.

 순직 경찰에게도 최고의 예우를 갖춘다. 20104월 미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 소속의 한 경관이 임무 중 불의의 사고로 숨지자 주 정부는 전 관공서에 주기(州旗)의 조기 게양을 명령하기도 했다. 순직 경찰관의 운구 행사에는 가두에 시민들이 몰려나와 헌화하는 감동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미국에서 MIU에 대한 존경은 일상에도 녹아 있다. 미 전역에서 열리는 프로야구 개막전에는 군인 자녀들이 초청돼 주전선수들과 자리를 함께한다. 또 많은 미국의 초중고교에서는 군인을 초대하는 한편 수업 전 순직한 MIU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갖는다.

참전용사에 대한 미국 사회의 극진한 예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골 마을에서도 참전용사들의 이름이 적힌 동상이나 기념비를 흔하게 볼 수 있고, 어디든 전사자 유해가 돌아오면 주민들이 함께 조의를 표하고 영웅시한다. 2차 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 아프간전에 이르기까지 세계 평화를 위해 전투에 참여했다가 산화했거나 부상한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기리는 것이 일상화됐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마지막 생존용사였던 프랭크 버클스 씨가 2011227110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거행된 버클스 씨의 하관식에 참석한데서도 그 존경과 배려의 깊이를 알수 있다. 아울러 미국과 캐나다 등 유엔 21개 참전국은 매년 정전협정일(727)한국전쟁 참전기념일로 정하고, 국가 차원의 기념식을 개최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전협정일은 그간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이승만 정부가 휴전을 반대해 서명을 거부한 점이 부각돼 2012년까지 정부 차원의 공식행사도 없었다. 유엔군사령부와 중립국감독위원회 차원의 간략한 기념행사만 판문점에서 열렸다. 6·25전쟁은 기억하지만 정전협정의 의미를 소홀히 하다보니 참전용사들의 공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측면이 많았다.

정부가 2013년 정전 60주년 기념식부터 정전협정일을 유엔군 참전의 날(국가기념일)’로 선언하고 참전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기로 한 것은 늦게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참전용사의 처우도 미국과 큰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경우 재향군인의 날이 국가공휴일이다. 보훈성은 부처 서열이 국무부, 국방부에 이어 세 번째다. 우리나라의 보훈처와는 격이 다르다. 공공기관이 앞장서 모든 제대군인에게 할인혜택을 주면서 체계적으로 예우한다.

일각에서는 한국보다 경제 군사적 국력이 뛰어난 미국과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부국(富國)이 있기에 강병(强兵)이 있는 게 아니라 강병이 있기에 부국이 있다는 지적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강병의 원천은 국민의 보훈의식에서 나온다.

이 같은 맥락에서 참전용사의 열악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참전용사는 현재 18만 명 정도가 생존해있지만 대부분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가족을 뒤로한 채 전쟁터를 누비느라 돈을 벌 기회가 없었고, 돈이 없으니 자녀교육을 잘 시킬 수 없었다. 이는 가난의 대물림 현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정부가 매달 지급하는 참전수당으로는 생활을 꾸려가기는 힘든 형편이다.

세계 10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이 보육과 복지예산을 증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숨걸고 조국을 지킨 참전용사들의 지원수당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지적은 흘려듣기 힘든 대목이다.

MIU에 대한 존경과 배려는 국가 위기때 국민을 국기 아래 통합하는 강력한 구심력을 발휘한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될 대목이다.

서구 선진국에선 국기는 국가의 얼굴인 동시에 강력한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이념과 정파를 초월해 온 국민이 하나가 돼 모국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활용돼왔다.

 미국의 성조기가 대표적이다. 1777년 국기로 채택된 이래 성조기는 다인종 다민족 국가의 강력한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이탈리아에 상륙한 이탈리아계 미군들이 (민족)와 성조기(국가) 중 어디를 따르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앞다퉈 성조기 기수(旗手)를 자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9·11테러 당시 잿더미가 된 세계무역센터에서 군인과 소방관, 구조요원들이 제일 먼저 일으켜 세운 것도 성조기였다. 그 다음 날 월마트 매장에선 11만여 개의 성조기가 팔려나갔다.

우리 군도 올 8월부터 모든 장병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기로 했다. 6·25전쟁 65주년 및 광복 70주년을 맞아 장병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고취하고 그 분위기를 사회 전반에 전파하려는 취지가 담겨있다.

우리도 MIU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사회적 여건과 분위기 확산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본다. MIU에 대한 배려는 선진국의 가장 중요한 척도다. 65주년 국군의 날을 맞아 MIU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댓글 0개

비밀번호 확인
작성 시 설정한 비밀번호를 입력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