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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지 11월호 안보논단]김정은의 핵미사일 폭주를 막으려면

2017.11.09 Views 1680 관리자

김정은의 핵·미사일 폭주(暴注)를 막으려면

윤상호 동아일보 군사전문기자(국제정치학 박사)

평양 외곽에서 20kt(킬로톤·1ktTNT 1000t의 폭발력)급 핵탄두가 장착된 미사일이 남쪽으로 발사됐다. 곧이어 아군의 방어선 전역에서 거대한 불꽃이 타 올랐고, 반경 23km 내 모든 생물이 순식간에 50% 이상 살상됐다. 한 시간 뒤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를 이륙한 미국 공군의 B-52G 폭격기가 동해상에서 핵탑재 크루즈 미사일 1발을 투하했다. 잠시 뒤 북한의 영변 핵시설과 군 기지는 초토화되고.’

 캐스퍼 와인버거 전 미국 국방장관이 1997년에 펴낸 넥스트 (Next War)’에 들어있는 북한의 대남 핵공격 시나리오다. 미 국방부가 한반도를 비롯해 주요 분쟁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한 워 게임(War Game)’을 바탕으로 쓴 책에서 저자는 북한 핵도발의 유력한 근거를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째는 북한 수뇌부의 예측 불가성과 광폭함이다. 가상 전쟁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북한 최고 지도자와 군부는 적화통일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전세를 역전시키고, 청와대 깃대에 인공기를 꽂을 수 있다면 핵무기 사용도 불사한다. 소설 속에서 설마하던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선제타격에 완벽하게 허를 찔린다.

 최단 시간 안에 서울 함락을 위해서라도 제한적 핵공격은 북한에게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6·25전쟁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 지도부는 개전 3648시간 안에 서울을 손에 넣어야 승산이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군은 개전 초기 최전방의 한미연합군을 단시간내 궤멸시키거나 무력화한 뒤 군사분계선을 돌파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생화학탄두를 탑재한 장사정포는 물론이고 핵미사일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또 핵무기가 유사시 한반도로 출동하는 미 증원전력에 대응하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북한이 사용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스텔스 전투기와 전략폭격기, 핵추진 항모전단 등 가공할 재래식 첨단전력을 갖춘 미 증원군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서슴없이 핵단추를 누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한미연합군의 북진 반격으로 체제 붕괴에 직면할 경우 북한은 동시다발적 핵 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고 저자는 내다봤다.

이 소설이 출간됐을 때 한미 정부 당국자와 언론들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일축했다. 핵실험도 하지 않은 북한의 핵위협을 과대평가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1차 북핵위기(19933~199410)를 북미간 제네바 합의로 순조롭게 넘긴 만큼 한반도 비핵화 기조는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 2차 북핵위기(200210~20059)로 다시 촉발된 북한의 핵위협은 수소폭탄급 핵실험을 포함한 6차례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 북극성 계열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발사할 정도로 고도화됐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한국 전역은 물론이고 주일미군 기지와 괌 기지, 미국 본토를 겨누는 사태가 조만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핵위기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상황이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

앞으로 북한은 최단 기간 안에 핵보유국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다음 수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인도·파키스탄과 같은 사실상 핵보유국과 맞먹는 핵무장력을 강화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2020년대 초까지 최소 50, 최대 200여 개가 넘는 핵탄두를 제작해 모든 종류의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이 최종목표다. 북한의 핵소형화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핵무기 보유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한 가장 호전적인 김정은 정권과 군사분계선을 맞댄 채 핵전쟁에 대비해야 하는 엄중한 현실이 닥칠 날이 머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우리의 대응태세는 여전히 부족하고, ‘묘수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다. 킬 체인(Kill Chain)과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 대량응징보복체계(KMPR) 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한 ‘3축 체계는 빨라야 2020년대 초에나 구축이 끝난다. 3축 체계를 갖춰도 유사시 북한의 핵공격을 완벽하게 저지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1발의 핵미사일만 놓쳐도 파국적 참화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전술핵 재배치나 독자 핵무장 등으로 공포의 균형`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이 핵옵션을 추진하기에는 정치·경제·외교적 제약과 난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북한의 핵인질로 전락하는 상황을 수수방관할 것인가. 국가생존이 걸린 초유의 위기로 보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것인가. 정부가 국민적 지혜를 모아 김정은의 ·미사일 폭주(暴注)’에 맞설 묘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다.

 대안은 없는가. 필자는 북한의 핵·미사일 대응 패러다임의 전환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본다. ‘·미사일 단추에 손가락을 올린 김정은 정권과 대화와 협상으로 비핵화를 달성한다는 환상부터 폐기하는 것이 그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민족과 통일적 감수성에 기대어 어설픈 협상으로 평화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그리고 핵과 미사일을 고수하는 김정은 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한국판 레이거니즘(Reaganism)’에 착수해야 한다. 경제와 외교, 군사적 압박을 총망라한 고강도 대북 총력전을 한국이 주도하는 방식이다. 과거 수천 기의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갖고 미국과 지구적 핵 패권을 다퉜던 옛 소련의 몰락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

 미국 정치컨설턴트인 피터 슈바이처는 1996년에 펴낸 레이건의 소련붕괴전략에서 소련의 몰락은 로널드 레이건 미 행정부의 집요한 대소(對蘇)봉쇄 전략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책에 따르면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규정한 레이건 행정부는 전방위적 경제·외교·군사전쟁을 수행했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제해 달러와 관련 기술의 유입을 막고, 폴란드 자유노조를 몰래 지원해 동유럽 국가들을 소련의 중력권에서 이탈시켰다. 첨단기술을 활용한 전략방위구상(SDI)으로 소련의 핵도 무력화했다. ‘힘을 통한 평화를 추구한 레이거니즘이 핵을 가진 공산제국을 종식시킨 원동력이라는 결론이다. 핵과 미사일로 체제를 지킬 수 없다는 역사의 준엄한 교훈인 셈이다.

 핵과 미사일이 체제 유지를 위한 비장의 카드가 아니라 자멸을 재촉하는 시한폭탄임을 북한도 깨닫도록 하는 것이 첩경이다. ‘·미사일 포기냐’ ‘옛 소련의 전철을 답습할 것이냐는 양자택일의 심판대 앞으로 김정은을 몰아붙여야 한다.

 대북 심리전 강화도 필요하다. 김정은 정권의 실체를 북한 주민에게 알리고, 개혁·개방의 숨결을 불어넣는 작업을 가속화해야 한다. 외부 조류의 유입으로 인한 내부 균열과 체제 동요는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다. 대화와 제재 병행이라는 어정쩡한 접근법으로 북핵을 저지할 골든타임을 낭비해선 안 된다. 정부가 북핵 현실을 직시하고 냉철한 대응을 주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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