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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호 자유지 안보논단] 일본과의 군사교류와 협력의 필요성
2016.01.04 Views 2778 관리자
일본과의 군사교류와 협력의 필요성
정 원 일
육군 예비역 준장, 원자력연구원 민군기술교류 협력 자문위원
이해하기 힘든 이웃나라, 일본의 현주소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양국 간의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통한 진정한 관계개선 노력이 없어 일시적으로 호전되었다가도 곧이어 악화되기를 반복해왔다.
주변국에 대해 끊임없이 다양한 방법으로 협력체계를 구축하며 지속적인 보상을 진행하고 있는 독일과는 달리 일본은 진정성 있는 반성과 그에 수반된 실천을 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침략을 당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 아베정부는 2차 내각 출범 후 전후체제 탈피와 보통국가화 실현을 위한 일련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헌법해석 변경(2014.7.1)에 이어 올 4월에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통하여 미·일 동맹을 한층 강화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의 한 축을 담당한 한·미·일 안보협력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예상된다. 지난 1978년 미·일 방위협력 지침은 소련의 일본 침공저지를 위한 주일미군의 안정적 주둔이었고, 1997년 미·일 방위협력 지침은 주변사태(한반도 유사시) 발생 시 일본 자위대가 미군의 후방지원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반해 2014년 방위협력지침은 일본의 유사상황 발생 시 미일 공동대응을 위한 양국 협력에 중점을 두면서 일본이 주체가 되어 방위하되 미군은 일본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를 규정한 것이다. 이로써 자위대 활동범위는 전 세계 수준으로 확대되었고, 자위대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 범위의 한계는 해제되었으며, 일본 안보를 위한 ‘상설 조정메카니즘’이 구축되었고, 우주 및 사이버 공간에서의 협력강화와 군사적 이용을 확대하게 되었다.
향후 아베 총리는 ‘자주 헌법 제정’을 당시(黨是)로 해 온 자민당의 헌법 개정실현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주변에 떠도는 「카쓰라-태프트」의 망령
아베총리는 소위 단카이 세대로서 전후 두 차례에 걸쳐 나타난 단카이 세대 중 두 번째 베이비부머 세대에 속한다. 그들은 일본 고도성장의 장본인이며, 일본을 경제대국으로 키운 견인차 역할을 한 세대로 일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태평양전쟁에서 패해 죄책감과 절망감에 빠져있던 부모세대와 다른 환경에서 자란 탓으로 이들은 패전한 결과에 대해 깊이 사과하고 반성하는 앞 세대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사고를 가진 단카이 세대들이 현재 일본을 보통국가화하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하던 헌법을 개정해서 정식군대를 육성하려고 할 것이며, 동북아지역에서의 안보역할 분담을 원하는 미국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나가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날의 국제정세, 특히 동북아 상황을 빗대어 일부 사람들이 마치 미국과 일본이 몰래 맺었던 「카쓰라-태프트」 밀약 당시와 매우 흡사하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카쓰라-태프트」 밀약은 1882년 5월 22일 청나라 이홍장의 주선으로 제물포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정식 외교관계가 성립되어 양국 간에 교역이 처음 시작되었고, 외교사절 및 군사교관의 내한과 미국 문화의 도입이 이뤄지던 중에 맺어졌다. 미 대통령 루즈벨트는 1905년 7월29일 육군 장관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특사로 임명하여 일본에 보내 당시 일본 총리인 카쓰라 다로와 밀약을 맺게 한다. 밀약의 주요 내용은 미국이 일본의 한국지배를 묵인하는 대신 일본이 필리핀을 침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대한제국이 결국 강대국간 밀약의 희생물이 되어 버렸던 뼈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관점에서 볼 때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이 자신들의 국방예산의 부족을 보완해주는 일본을 한국보다 더 중요시 생각해 자신의 국익을 위해 한국을 일본의 세력권으로 인정해준 그 당시와 너무 흡사하다는 주장을 절대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아베정권의 궁극적 목적은 개정된 미·일 안보동맹지침과 평화안보법제하에 헌법까지 개정될 경우 그 역할과 활동범위가 확대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새롭게 변모시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이 친중 정책으로 말미암아 미·일과 거리를 둔다면, 미국은 한층 더 일본 중시의 정책으로 돌아서면서 모든 정책에서 한국을 배제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면, 나라의 경제가 수출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현재 함께 사용 중인 중동으로부터 동북아에 이르는 해상교통로(SLOCs)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경우, 미국은 일본군 주도의 작전을 지원하면서 중국으로 인해 작전참여를 꺼리는 한국을 이 작전에서 배제시킬 가능성이 크다. 대신에 한국에게는 해상교통로 확보에 따른 막대한 전쟁비용을 부담시키거나, 한국이 마지못해 작전에 참여할 경우 일본군의 지시를 받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일본이 양국 간 동맹을 강화하고 일본이 군사대국화 하는 과정에서 구한말과 같이 관망자 입장에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가 국익이 침해당하는 역사의 누를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비록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소원하더라도 군사,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일본과의 관계를 지속하여 일본이 정치적 상황을 안보,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일동맹 강화에 따른 일본 자위대의 변화
자위대와 미군은 1985년도 이후 미·일 공동훈련 및 통합연습을 지속적으로 실시해왔다. 미국과 일본은 미·일 공동훈련을 통해 양국 간 상호운용성과 공동 대응능력은 물론 미·일 안전보장체제의 신뢰도와 억제력을 유지, 향상시켜 오고 있다. 특히 일본 자위대는 올 4월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이후 미·일공동훈련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며 횟수를 늘려가고 있다. 사실 미·일 공동훈련이 이와 같이 급작스럽게 규모나 횟수가 늘어나게 된 것은 9.11테러 이후 국제적인 안보문제에 대해 미·일 양국 간 동맹체제가 강화되었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확대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의 역할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일본은 본토에서 하던 훈련을 해외로 확대함으로써 다각적인 공동훈련을 통해 지역 및 국제적 협력훈련의 성과를 달성하고 있으며, 그 밖에 미·일 공동작계를 더욱 내실 있게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올해 미군과 일본 자위대 간에 실시한 주요 통합훈련은 미태평양사령부 및 주일미군과 일본 각 막료감부 등이 참석하여 실시하는 지휘소연습(CPX)인 미·일 공동통합연습과 미국 캠프 펜들턴에서 미 해병대와 3함대 그리고 일본 기동전개부대가 연합으로 실시한 실기동훈련(FTX)이다. 육상자위대 역시 지휘소 연습(CPX)과 실기동훈련(FTX)을 미국과 일본에 있는 훈련장에서 적게는 100여명으로부터 많게는 1,500명에 이르는 병력이 참가하여 실시하고 있다.
한편, 자위대와 미군과의 공동훈련에 대해 일본 방위백서를 토대로 분석해보았을 때 횟수면에서 2012년에 비해 2013년과 2014년에 국내 및 해외에서 20% 이상 급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난 10월 말 성우회와 일본 예비역 장군 모임인 간화회 간의 모임인 한일 전략교류 간담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참석한 일본 자위대 예비역 장군들은 미일 공동훈련이 많이 증가했고, 특히 해외에서의 공동훈련이 많이 증가했음과 미국으로부터 신무기 구매요청이 많이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최근의 미일 공동훈련은 중국을 대상로 한 해상진출 차단을 위한 견제와 해상교통로 안전확보를 목표로 한 공동훈련을 다각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구축을 지원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는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조선은 일본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종조에 신숙주 일행이 일본에 통신사로 건너간 이후 무려 134년 동안 조선의 사신은 일본에 가지 않았다. 반면에 일본은 조선 태종4년에 일본 국왕 사신이 건너온 후 임진왜란까지 183년 동안 60여회 국사를 보내왔으며, 한 해 5,000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다녀갔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 왜 이길 수 없는 전쟁인가에 대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신숙주는 일본에 다녀와 「해동제국기」를 저술했는데 임란이 일어나기 134년 전에 이미 신숙주는 일본을 경계해야 할 나라임을 충언하고 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2년 전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일본에 파견하였으나 이들이 상반된 보고를 함으로써 조선의 국토와 백성은 역사 이래 가장 참혹한 희생을 치러야했다. 고종이 보낸 제2수신사 김홍집은 청나라 참찬관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을 가져와 소개하며 일본에 대한 경계와 유비무환을 충언하였으나, 우리는 격렬한 당파싸움을 통한 내분과 ‘영남만인소’ 사건에서 보듯 국제정세에 대한 무지로 인해 또 다시 병자호란과 한일합방이란 참혹한 비극을 맞게 된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말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경고는 지금도 적용되는 변함없는 진리다. 그 진리를 되새기며, 우리는 조선시대 이래 애써 외면하고, 무시하고 깔본 일본에 대해 이제는 그 태도를 철저히 바꿔야 한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이제 불행한 역사를 다시는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 국민 모두는 일본을 잘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야야 한다. 중국의 군사적 급부상을 기회로 군사대국화를 달성하고자 하는 일본은 주변국의 불안을 감안하여 그 의도를 감추려 하고 있지만 아무리 군사대국화에 대한 위장과 기만에 능숙해도 그들의 의도는 곧 드러나게 되어 있다. 미국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화되어 가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미국이 군사적으로 요구하는 것 이상을 제공한 일본이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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