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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균렬 /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2015.11.27 Views 2004 관리자

서균렬 / 서울대 교수·원자핵공학

‘원자력의 민간 이용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 간 협력협정’은 한국이 미국의 사전 동의나 허락 없이 원전(原電) 연료로 쓸 수 있는 우라늄을 만들거나 플루토늄을 빼내지 못하게 했었다. 세계 5대 원자력 강국이 된 우리에겐 불평등해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말도 많던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이 42년 만에 바퀴를 바꿔 달고 다시 한길에 올라섰다.

구체제가 종료되고 신체제가 출범한 건데,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산 우라늄을 20%까지 농축할 수 있고, 원자로에서 나온 연료를 고온건식으로 처리할 수도 있을 길을 열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미국산 물질이나 장비·부품·정보 교류가 활성화돼 향후 투자나 합작 가능성도 커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수입에만 의존했던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한 문구가 느슨해지면서 우리가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평가가 나오는가 하면, 재처리 언급 자체가 외교·안보·환경 측면에서 부정적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재처리는 습식과 건식으로 나뉘는데, 습식은 프랑스 등지에서 오래 전 상용화된 반면, 건식은 1950년대 시작해 1980년대 미국이 개발한 ‘파이로프로세싱’이 대표적이다. 문자 그대로 ‘불의 처리’, 즉 고온공정인데 2010년대 한국이 신기술로 다시 들고 나왔다.

현재 플루토늄은 미·소 간 냉전이 막을 내리니 폭탄에 쓸 이유는 진작 없어졌고, 플루토늄이라는 땔감을 쓸 수 있는 유일한 아궁이, 이른바 ‘고속원자로’는 선진국들의 수십조 원이 넘는 투자에도 불구하고 개발이 지지부진하면서 현대판 ‘계륵’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인도가 개발하니 한국도 해야 한다고도 한다. 한국 외에 이들은 모두 핵폭탄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지속 가능 운운하면서 재처리나 ‘재활용’하려 한다면 미국으로선 저의를 의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도 쌓여 가는 플루토늄과 함께 미국 눈치 보랴, 주변국 힐끔거리랴 좌불안석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은 모든 기술이 그러하듯 온갖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아킬레스 건(腱)이 있다. 여기서 나오는 물질은 현세대 경수로에서는 맹독성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태울 수 있는 고속로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데, 고속로는 1940년대 연구를 시작한 이후 실용화에 성공한 적이 없고 안전성은 차치하고 경제성도 보장하기 어렵다. 이 또한 한국에선 미래 신기술로 통용되고 있다.

필자는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고속로를 연구하며 일본 몬주의 화재위험과 운전 난항을 예견한 바 있다. 프랑스에선 문자 그대로 ‘초(超)불사조’ 슈퍼 피닉스의 안전 문제를 토로하고, 미국에 돌아와 후쿠시마 같은 비등경수로의 중대 사고를 경고했다.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앞으로도 듣지 않을지 모른다.

한미원자력협정의 참뜻은 기껏해야 수백 명 과학자의 애국심보다는 세계 10위권을 노리는 국가의 백년대계, 수천만 국민의 강녕, 절대로 양보해선 안 될 한반도의 지속 가능 발전에서 찾아야 한다. 케케묵은 20세기 식 ‘핵주권’이나 부질없는 21세기식 ‘재활용’은 접고 민간 부문의 실리 찾기에 발 벗고 나서야 한다. 핵연료는 나온 다음 처리나 처분하는 것 못지않게 신재생과의 역할 분담을 통해 원천적으로 줄여나가는 게 현명하다.

원전은 국내 증설보다는 해외 진출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고, 독야청청보단 합종연횡이 살길이다. 신협정의 앞으로 20년, 권익보다 실익을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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