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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자유지 6월호 안보논단] 뒤돌아 본 한일수교 50주년

2015.06.04 Views 2099 관리자

뒤돌아 본 한일수교 50주년

서상문(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

19643월 정부가 한일 외교 정상화 방침을 발표하자 전국에서 대규모 반대시위가 일어나는 등 한일 수교과정은 순탄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시급한 경제개발이 필요했던 당시 정부로서는 일본의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했다. 기본 조약 체결이후 한일관계는 급속히 가까워졌지만 한일 국교 수립 50주년이 되는 오늘까지 그 후유증도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시 기본 조약체결의 미흡한 점을 알아보고 우리의 대응방안을 모색해보자.

한일 국교 정상화의 성과
한일은 1951년 교섭을 시작해 총 7회의 회담을 끝으로 만 138개월 만인 1965622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으로도 불림)을 체결하고 1218일에 비준하면서 반공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동일한 이념을 추구하는 이웃국가가 됐다. 광복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이로써 당시 동아시아지역 전체가 냉전에 휩싸여 있던 상황에서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참여한 미국의 반공망이 구축됐다. 이것은 엄존하는 북한의 위협과 도발을 억지하는 근원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선진 기술, 자원과 자본을 지원 받아 경제개발을 시작하였고, 일본은 한국시장을 확보해 작지 않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 지난 50년 간 두 나라 사이의 인적, 물적 교류는 확대일로에 있어왔지만 시야를 안보와 경제 측면에만 고정해놓고 보면 양국은 처음 국교를 정상화하고자 한 목적, 즉 냉전구도 하에서 반공에 대한 공동 대응을 기반으로 한 안보적 협력과 경제선진국 일본과의 경협이라는 두 가지 필요성을 충족시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또 한일 국교수립은 식민지국가와 피식민지 관계라는 수직적 관계에서 평등, 대등한 수평적 관계로 전환된, 세계사적으로 귀감이 되는 좋은 본보기다.

미흡했던 조약체결
그러나 한일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하여 마냥 축하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일협상 체결의 실상과 본질을 아는 게 더 의미 있고 중요한 시점이다. 한일기본조약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따져보고, 또 조약 내용이 가진 한계에서 기인한 양국 관계의 현주소를 짚어보고 대응책을 모색해보는 게 더 긴요하다.

먼저 일본이 당시 우리에게 제공한 금액의 규모부터 문제가 있다. 근대화된 일본이 후진국에게 베푼 근대화의 시혜였다고 생각하는 한 한일 수교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보따리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조약 체결로 일본정부로부터 3억 달러의 무상원조와 2억 달러의 청구권자금을 지원받았는데, 당시 환율(달러당 270) 기준으로 2,160억원에 해당한다. 그 시절 한국정부의 한 해 예산이 약 32,000만 달러, 외환보유고가 14,000만 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일본 측에선 이 돈이 많거나 적절한 금액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이 액수는 일본이 여타 아시아 국가들에게 지원한 금액과 비교하면 결코 큰 게 아니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잠시 침략했던 미얀마에 2억 달러(19542), 필리핀에 55,500만 달러(19565), 인도네시아에 22,000만 달러(19581)를 원조했다. 이 원조에 더해 이 세 나라에 총 7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는 식민지 상태로 36년 동안이나 일본이 우리에게서 착취해간 물자와 우리 민족에게 강요된 희생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돈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한국전쟁 시기 우리가 공산주의의 침략에 저항해 피로써 일본의 안전을 지켜준 덕택에 경제대국을 이루지 않았던가? 이 시기 미국은 일본에게서 미군용 군사장비를 대량 구입했는데, 1951년에 약 6억 달러, 1952년과 53년에 각각 8억 달러가 넘는 수입을 가져다 줬다. 막대한 달러의 유입은 일본경제에 윤활유가 돼 공장 및 설비에 신규투자를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일본경제가 회복되는 밑거름이 됐다.

한일협정의 조약 내용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 기본관계 협상에서 한국 측은 1910년의 한일 강제병합조약과 그 이전 한일 간의 모든 조약·협정들이 폭력적 강압과 불법으로 체결됐기 때문에 애초부터 성립이 되지 않는 원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본 측은 당시 국제사회가 용인한 합법적인 체결이었기 때문에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으며, 단지 1965년 시점에 무효가 됐다고 주장했다. 두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됐지만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already null and void)는 외교적 수사로 절충돼 애매하게 처리돼 훗날 외교, 영토문제가 된 불씨를 남겼다. 일본의 경제지원이 절실한 한국정부는 안보경협의 필요성에 따라 일본의 한국강제병합의 불법성을 인정케 하는 것을 관철하지 못하고 한일 청구권협정에 배상조항을 삽입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결국 식민지배상과 관련해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2조 제1)을 한 것으로 합의가 됐다. 이는 전후 미국의 편파적인 중재로 체결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선례에 따른 결과였다. 미국은 이 평화조약에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당한 피해국이었음에도 한국을 제외한 상태에서 불법 식민지배 피해자들에게 대한 손해배상문제와 독도영유권을 확실하게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2005826일에 한국에서 공개된 한일협정 외교문서에 의하면 최종적이고 완전한 해결은 양국 사이의 외교적 보호권(diplomatic protection)을 포기한 것에 불과했다. 일본이 한국정부에 제공한 유무상 5억 달러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대한 손해배상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을 축하하고 경제를 개발시키기 위해 제공한 독립축하금또는 경제개발 협력자금이었다. 따라서 일본군 성노예, 원폭피해자, 사할린 동포 등 식민지 시절 당한 피해자 개인들은 일본정부에 개인의 국제법상 손해 배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법적 권한이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봉합된 한일협정은 국제법적으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어 응당 해결해야 할 과거사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족쇄가 돼버렸다. 역사문제가 제대로 청산되지 않다 보니 독도문제도 역사문제가 아니라 영토문제로 변질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사회가 극우화 되고 정치인들이 일본을 전후의 평화헌법을 고쳐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끌고 갈 수 있는 토양이다. ‘극우란 전후 평화헌법을 근간으로 한 평화체제를 깨고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몰고 가고자 하는 세력을 가리킨다. 일본은 이미 국가의 중심축이 극우화로 기울었다. 아베 총리의 지난 워싱턴 방문으로 평화체제를 바꿀 수 있는 환경과 동력을 만들어 놓은 상태다. 그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미 의회의 환대를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승인받은 표증으로 여기면서 득의만만해 한다. 일본의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주변 지역 사태에만 개입하는 것으로 수정한 1997년의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미일의 역할 분담이라는 명분으로 미군과 협력하는 자위대의 활동범위를 일본주변 지역을 넘어 전세계로 확대했다. 일본군 성노예도 국가가 강제한 게 아니라 사적인 인신매매범죄 차원의 개인적인 문제로 격하시켜 국가의 책임을 회피했다. 아베는 일본자위대가 전세계 어디서든 미군에게 후방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미국에 협조하는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과거사에 관한 사면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아베는 미국의 지원 아래 국내 정치에서도 장기 집권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적인 한일관계를 위한 대응필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째, 일본과의 관계에서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원칙에 집착하기보다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 적절한 명분을 찾아 외교를 정상화하면서 민간 교류를 지속, 확대시키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독도영유권 문제, ‘일본군 성노예등의 과거사문제와 여타 대북협력, 경제협력 등의 현안문제는 분리해서 대응하자는 것이다. 독도와 일본군 성노예문제는 정의, 도덕, 인권, 여성평등 등 인류 보편적 문제로 접근해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을 상대로 적극 홍보해 공감대를 확대해나가는 식으로 일본정부를 압박해야 할 것이다.

둘째,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고 중국이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일본과 일정한 수준까지는 안보협력을 해야 한다. 지금처럼 원칙만 고집하다간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양자택일 상황으로 내몰리는 최악의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한미일, 한중일 등 동북아 지역 주요 국가들간의 다자협력 네트워킹을 만들어가야 한다. 무엇보다 대화 단절이 지속되고 있는 북한과의 대화에 물꼬를 터 한미일, 한중일 관계에서 고립돼 가는 상황에서 입지와 운신의 폭을 넓히는 게 시급하다.

셋째, 국가의 외교력이란 국력이 뒷받침 될 때 힘이 실리듯이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력을 증강시켜야 한다.

한일 양국은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관계 개선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것이 수교 50주년이 되는 올해를 헛되이 보내지 않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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