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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17677

2026.08.18 Views 14 문영일


이재명 군통수권자는 쿠데타 말하기 전에 육사를 배워 알아야한다
 
이재명 대통령(국군통수권자)‘“육사가 전군을 장악하고 가끔, 3번이나 쿠데타하였는데 앞으로도 할 수 있다, 하위장교 단계에서 육사출신 비율 적은데 위로 갈수록 육사가 거의 독점하는 구조로 타국은 학사 학군장교가 훨씬 높다, 그래서 등등 때문에 육사를 없애야한다고 말하고 서둘러야 한다고까지 강조했다. 이 말 “...”은 맞고 사실이며 물론이다. 그런데 그래서 그것이 나쁘다는 이 대통령(국군통수권자)의 인식에 문제가 있다. 이재명 국군통수권자에게는, 미안한 말씀이나, 아마도 군 미필이라 그러한지 육사와 육군 그리고 국군의 본질과 군 정예화 인사운영 관계에 무지해서 그렇게 언급한 것 같다. 여기에 일부 언론과 정치세력 그리고 일부 유식자까지 그렇게 알고 있으나 그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이다.
따라서 알아야 면장도 한다는 금언에 따라 육사를 먼저 알고 육사를 없애기 운운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본 육사인의 평생군인생활을 통해 국군과 쿠데타’, ‘육사와 육사정신’, ‘육사(출신 장교)의 핵심직 이수 성장과정’, ‘국군 핵심 지휘부에 육사인의 당연한 다수그리고 일반장교 육성과정과 성장과정에 대해 간략하나마 소개하려고 하니 반듯이 군 통수권 행사 이전에 먼저 배워 알기를 권고하고자 한다.
 
. 지난날의 군사사태는 정당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했다,
- 이 통수권자는 육사독점육사쿠데타라는 말을 삼가야 한다 -

첫째로 지적된 ‘5.16군사혁명은 필수불가결했다. 당시 미국 집단 유학 등 일반보다 선진 우월했던 군장교집단이 궐기한 결과로 대한민국 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이론의 여지는 없을 것이다. 만일에 그 군사혁명이 없었더라면 지금 우리 한국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오늘의 이재명 정권 모습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둘째로 지적된 ‘12.12사태를 쿠데타로 정의한 것은 주로 김재규, 정승화 세력과 좌파정권들의 생태적 감각에서이다. 진실은 쿠데타가 아니고 반대로 쿠데타진압사태였다. 19791026일 초저녁, 당시 국가최고권력자 중 최상 상호신뢰자 4명의 술자리에서, 박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던 (친구) 김재규가 배반하여 박 대통령을 처참하게 1미터정도 거리 마주 앉은 정면에서 권총으로 이마를 쏴, 그 튄 피로 자기도 흠뻑 젖은 - 시해함과 동시에 그 부하들이, 그동안 협력관계였던 대통령 경호요원 수명을 (계획대로) 인정사정없이 동시에 수십발의 총격으로 살해해 제압하였다.
단순한 시해사건이 아니다, 김재규는 3단계 쿠데타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실행을 위해 먼저 주요 수도권부대 지휘관들(3군사령관, 최기군단과 사단장들,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등)들을 사전에 친세력으로 배비해 두었다. 특히 당일은 당시 육군참모총장 정승화(계엄령이 발령되면 계엄사령관이 된다)를 불러 현장 근거리에 위치시켜놓고 사태후 함께 계엄사령부(즉시 선포예정)로 강행하려 하였다(실제로 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다행하게도, 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 유사시 국가 전 수사기관 통합지휘하는 합법기관 이 바로 전두환 장군이었다. 그는 대통령(대행) 명에 의해, 대통령 면전 시해 직후 반란계획 시행중인 김재규를 요령껏 체포하고 이 쿠데타를 일단 저지시켰다. 그리고 후속조치를 취했는데 그중에는 사건후 피 묻은 김재규와 함께 행동한 육참총장 정승화에 대한 조사가 당연히 포함되었다.
당시 전통적으로는 3군 총사령관 격이기도 하고 유사시 계업사령관이라 대통령과 흔히 독대하는 자리인 육군참모총장(정승화), 대통령 술자리 합석은 고사하고 문밖에서 영문 모르고(?) 일개 중정부장 호출로 불려와서 그의 지시를 기다렸고, 그때 대통령 술자리에서 권총 소리는 물론 비명과 함께 수십발의 소총 난사소리까지 듣고도 기다리다가, 피묻은 김재규와 함께 군 벙커로 동승해 가면서 김재규지시에 따라(?) 몇가지 후속조치까지 취했었다. 그러기에 당연히 국가 합수부의 의심과 함께 조사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합수부는 그동안 사건조사 종결을 위해 예의를 다해 거듭 조사협조를 요청했으나 정승화(직명생략 양해 바람)는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의 직책을 이용해 거부하면서 도리어 자기편을 보완하기 위한 고위급 군인사를 단행함은 물론, 오히려 전두환 합수부장을 제거(해임/예편 등)하려 하였다. 내일이면 인사명령이 하달되려는 그날, 이에 조사불능은 물론 긴급과 위험을 느낀 합수부는 정승화 피의자의 강제 연행을 결정하고, 이에 불응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신뢰할 수 있는 1공수여단 (과거 전두환 장군 지휘 부대) 일부부대를 대기시키고 수방사 30여단 보호하에 1212일에 연행계획을 집행하였다. 그 과정에 한두건 불의의 총격사고도 있었으나 무난히 피의자를 연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제2군사변란을 저지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항간에서는 ‘12.12사태라 하였는데 특히 당시 정승화 군세력, 김재규 쿠데타세력들과 좌파세력이나 일부 언론들 - 마치 김재규를 로마역사의 푸르타크영웅으로 받들려고 하면서 -신군부 쿠데타라고 자의적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정치 분위기속에서 합법기관인 국가합수부가 핵심 쿠데타 피의자를 연행하기 위해, 행여나 있을 수 있는 저항/반격적 군사변란을 막기 위해, 위험한 방해를 무릅쓰고 단행한 행위를 구데타라 하는데, 그것은 잘 몰라하는 크게 잘못된 주장임에 틀림없다.
셋째로 소위 ‘12.3 내란 또는 쿠데타라고 대통령과 좌파세력들이 주장하는데 물론, 상식을 벗어나 난데없이 감행된 ‘12.3게엄령행위는 선포한 대통령과 설계한 어설픈 사람들의 큰 잘못이기는 하나 군사 쿠데타 주로 군대가 헌법에 어긋나는 비합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기존정부와 통치권을 강제로 빼앗는 일’ - 는 분명 아니다. (물론 내란에 대한 재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에 이르게 한 국가위기상황을 걱정하는, 위국헌신 파사현정에 살고 있던 육사출신 군지휘관들 또한 잘못되지 않았다. 그때 그 당시 국방위기를 느끼지 않은 군지휘관이 있었다면 그는 육사인이 아니였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다만 어설프고 잘못된 국가명령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를 육사 쿠데타라고 말할 수 없음 또한 분명하다.
 
. 왜 좌파정권들은 육사/육사인을 고의로 무시하고 심지어 없애려할까,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는 육사와 육사정신이 두렵기 때문이리라 -

대한민국 정규 4년제 육사는 19511030, ‘6.25남침적란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의 한국군 정예화, 국가(국군)의 핵심 엘리트 양성을 위해, 전쟁중임에도 특단의 조치로, 경남 진해에서 개교하였다. 1954년에 진해에서 현재 태능 화랑대로 옮겨와 필자는 당시 1학년 생도 - 이승만대통령의 소원과 국민의 기대대로 성장하여, 2026년 현재 육사 역사 통산 개교 80주년을 맞이하였다. , 육사는 국군의 핵심 엘리트 각급 참모요직과 주요 전투부대 지휘관에서 참모총장, 합참의장에 이르기까지 군의 핵심요직을 책임지는 요원 를 양성하는, 국민 명령에 의한, 국민세금으로 된 국민의 핵심 군사교육기관이다.
그들은 입교와 동시 시작되는 절벽에 떨어트려진 사자새끼 살아 올라가는 고통을 감당하는 하계(71~830) 기초군사훈련을 태능화랑대 연병장에서 극복해내는 것을 시작으로 화랑5지인용의 교훈을 따라 4년간의 수도생활을 한다. 하루일과는 새벽 6시 기상, 8시에 교실로 학과출장, 12시에 점심, 1시에 오후학과 출장, 오후 2시에 오후학과 끝내고 바로 과외 체육단련 시간, 저녁 식사후 야간 자습출장, 9시 퇴장, 10시 점호후 취침. 이 일과를 3금제도(금주, 금연, 금혼)와 명예제도(잘못이나 거짓을 스스로 반성/처벌) 그리고 ‘Daily System’(40분 강의 10분 시험제도)하에 계속하면서 4년을, 오로지 위국헌신파사현정’(破邪顯正)의 정신으로 극복해 나간다.
그리하여 연 250여명이 이학사와 육군소위로 임관후 10년 의무 장기복무(강산이 변하는 그 시점 이후는 선택의 여지없이 거의 전원 평생복무), 일반장교(비육사)와 달리 처음부터 평생을 바치는 직업군인의 길로 들어서며, 모두가 최전방 부대, 민간인이 살지 않는 전투지대로, 5개 핵심전투병과(보병, 포병, 공병, 기갑, 통신) 지휘자로 임명되어 배치된다.
전방 지휘관들은 소대장 때부터 완성된 즉 군사에 유능하고 국가와 군 현직부대에 전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장기복무자인 동시에, 초급부대에서는 Mighty 장교로 반가워하고, 상급자(대대장과 연대장 등)는 요직 즉 소대장부터 작전장교, 중대장 그리고 연대 작전주임으로 발탁해서 활용한다. 그래서 육사(출신장교)는 출신 근본에다가 하급단위부대에서부터 군요직을 거쳐가며, 원 육사설립 국가목적대로 성장해 나간다.
또한 단순한 인내심만으로는 초급단계 3~5년간의 첫 최전방생활은 해내지 못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열악한 생활환경의 최전방에서, 특히 장기 복무자인 육사인에게는 (‘앞으로 평생을 여기에서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가끔 가끔의 회의를 털어가며), ‘나라위해라는 순수한 애국심과 육사인의 긍지 하나로 버텨나간다. 그와 함께 물론 육사정신도 더욱 굳세어져 간다.
육사생도들이나 육사인(출신)들이 집단으로 가지고 있는 태생적 프롤레타리아 지식인같은 마음가짐에 육사 수련으로 갖게되는 위국헌신,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육사정신은 국가가 요구할때는 임관 전후 무관하게 주저없이 발휘된다. 굳이 예를 들면, 19565월에 있었던 제3대 대선에서 부정부패 자유당이 싫어 진보당의 조봉암에 근 100% 투표하였고, 임관해 나가서는 우선 군대내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보급투쟁’ - 한 예로 돈산훈련소를 육사 중위(전두환 중위도 포함)들이 정상화하는 등 등으로 군내 부패를 혁신하였다.
‘3.15부정선거때는 각 부대 육사전원(박정희 소장도 포함)이 오로지 부정선거행위에 반대하여 투표용지를 불태우거나 휴가갔다. 이러한 <위국헌신 파사현정>의 정신은 해마다 육사 졸업식날 선배들이 식장에 모여 임관 후배를 격려하고 어깨동무로 뭉쳐 과시함으로서 굳어지고 승계되었다. 그리하여 ‘5.16군사혁명당시에는 선배들의 권유로 생도들이 즉시 서울광장에 출동하여 시가행진함으로서 당시 필요불가결했던 군사혁명을 지지, 전 국민과 함께 군사혁명을 성공시키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면 육사는 대한민국의 헌법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임을, 국군통수권자를 비롯하여 군사정책 입안자들, 애국국민들은 부디 이 순수한 위국헌신 파사현정 정신의 육사인들이 핵심직을 맡아 국군을 지도해 나감으로서 강장밑에 약졸없는 국군이 존재하게 된다는 사실과 진실을 배워 알아주기 간절히 바란다.

. 육사가 육군과 국군의 고위직, 핵심직에 다수임은
당연한 국가목표요 명령이다.

이 통수권자 뿐만아니라 다수의 정치인이나 상당수의 언론인 등 가 군의 각 계급 진급율 비교나 초임장교 숫자 비교를 통해 육사의 고위 핵심직 다수를 불순한 용어인 독점이라 말하면서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 사실이 대단히 유감스럽다.
군 장교(육군) 진급(심사)의 본질적 주요요소는 출신별 숫자놀음(안배)에 있지않고, 개인의 군과 부대에 대한 충성도, 요직경험도, 장기복무여부, 기본적인 자질 그리고 상급자 평가(고가표)와 추천에 있다. 그러기에 의당히 엘리트 길을 걷는 육사인이 상급직위로 진출해 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요 의무이기도 하다. 진실은 이러함에도 군인사 진급제도의 본질과는 거의 무관한, 진급심사후 참고 통계자료의 하나인 출신별 비율이나 숫자를 지목하며, ‘군종간 안배/육사 독점의 불공정운운하는 것은 역시나 국군 엘리트육성 진실과 인사운용제도의 실제를 잘 알지 못하기에 생길수 있는 인식부족 또는 식자우환으로 볼수 있다.
진실은 이러하다. 육사출신은 일반과 달리 임관과 동시, 다만 육사에 남는 교수20여명을 제외한 250여명 전원이, 후방아닌 최전방 방어진지의 그것도 5대 핵심 전투병과 즉 보병 포병 공병 기갑 통신부대에 배치된다. 그들이 소대장일 때는 사단에 1개기 7명정도, 1개연대에 2명정도 배치되어 모볌소대 선도소대로 ’Mighty’ 소대장이 되어 항상 중대나 대대의 우일선소대장이 되고, 부대가 GOP로 이동하면 최일선 부대장 GP소대장, 전투전초 소대/중대장 등 이 되고, 이어서 부대 참모요직인 작전장교 등의 요직(즉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을 맡는다.
물론 상급자의 발탁에 의해서다. 상급자가 그 누구든 간에 육사와 일반장교를 놓고 누구를 발탁해 믿고 활용하겠는가. 그래서 육사출신 대부분은 일단, 결혼 엄두 못내고 최전방에서 소대장 대대 작전장교 그리고 중대장을 거치면서 3~5년을 즉 23세에서 27~8세에 이르기까지 사회생활과 동떨어진 열악한 환경에서, 물론 영끌이나 주식놀이는 엄두도 못내고, 그저 오로지 나라지키는 명예만 끌어안고 병사들과 함께 위국헌신한다.
한편, 학군사관(R.O.T.C)은 대학 3학년에 지원하여 가정에서 집에서 따뜻하게 집밥먹어가며 단지 4번의 방학기간(합계 통산 16주간)에만 기초군사훈련 받고, 2500여명이 임관하여 헌병을 비롯해 (2450) 전후방 전병과 근무지에 배치되고, 24개월 의무 복무후는 대략 0.3%(100여명)만 남고 거의 모두는 제대해 나간다. 학사장교 또한 병영 아닌 집밥 따뜻하게 먹여가며 대학 졸업후 지원하여 단지 16주 훈련후 (400여명) 임관, 전후방 전 병과에 근무후 3년의무(7년 복무 중) 복무하고 역시 거의 모두 제대한다. 3사는 2년제 전문대학 이수자로 지원하여 2년간 군사훈련과 학사편입 대학과정을 이수후 학사 함께 임관(368)하여 전병과로 전후방에 배치되어 6(초임 대위급) 의무복무하나 소수만이 장기복무 지원한다. 그래서 일반장교(육사외)는 모두(거의 3사출신) 현재 장성 포함 약 2500여명이 장기복무중이다. (육사는 소위에서 소령계급까지만 해도 2500여명 된다) 이들 일반장교 모두의 근본 근무(정신)는 일단 단기 군 의무복무에 있고, 복무중 개인적 의욕과 취향에 따라 극소수만 남아 장기복무를 택한다. 대체적으로 초급장교 시절에는 부대요직 아닌 전문직(주로 인사 정보 군수)에 근무함으로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고위급을 향한) 엘리트 과정을 밟는다고 말하기에는 육사와 비교불가하다.
그래서 보건데, 육사는 임관전 장교육성과정과 임관후 엘리트 성장과정을 통한 차이 군 정책부서 실무 책임자이거나 일선부대 지휘관 및 참모인 영관장교 진급심사에서 육사출신이 일반출신보다 훨씬 높은 진급율을 보인다(네이트 뉴스) -로 영관급에 도달했을 때 여타 R.O.T.C나 일반장교와는 질적인 부문는 물론 숫적인 면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역연하여 비교불가하다. 그럼에도 하급 단계에서는 압도적으로 많은데 위로 갈수록 육사....”라고 하는 이 대통령과 언론, 특히 좌파 정치인들의 언행은 육사와 국군조직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것이라 믿기에 부디 먼저 공부해 진실을 알고난 연후 육사없애기위로 갈수록 현격한 차이운운 해야 할 것이다.
 
. 왜 국군의 핵심직에 육군, 육사가 당연히 다수이어야하나
- 한국의 주전장은 육상이고 주력은 육군이고 그 핵심요원은 육사이기 때문이다 -

그동안 해공군인들이 국방부를 육방부라 인정할 만큼 당연히 중요직 다수가 육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종북좌파정권 특히 과거 문재인 정권에서 무리하게 육군(육사)을 배제하고 해공군과 일반을 주로 보직하였다. 이재명 대통령은 외국군대는 한국군과 달리 일반장교가 다수다로 알고 역시나 장관은 방위출신 정치인으로, 합참의장 등 요직은 해공군으로 배치하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인 것같다.
예를 들어 그들이 안다는 미군구조는 역사 전통적으로 주전장이 미 본토에 있지않고 해외에 있기때문에 군사전략적 운용 즉 군구조적 비율은 오히려 해군과 해병대가 높다. 그리고 핵무기운용과 세계전쟁억지 전략을 뒷받침하는 공군 특히 전략공군과 군구별 전술공군이 미 육군보다 우위이거나 동등한 입지에 있다. 그래서 4군체제이고 육군 아닌 타군이 당연히 요직을 가질 수 있다.
한반도의 주전장은 육지(육상)에 있다. 해군이 바다를 제압해도, 공군이 평양을 잿더미로 만들어도 육군이 평양을 밟고 압록강과 두만강에 도달해야 전쟁은 승리로 끝난다. 다시 말하면 한국군 국가안보전략(군사전략)의 주축은 육군이기 때문에 전쟁승리는 육군의 핵심리더에 달렸다. 이 핵심리더의 주력은 마땅히 육사가 다수일 수밖에 없다. 이 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따라서 이를 부정하고 싶은 종래의 종북좌파세력과 현 이재명 대통령과 세력들은 먼저 한반도의 전략적 역사지리와 군사공부 좀 해서 알고 통수권을 발휘해 주기를 소망한다.
 
. ‘만년지대계 육사’, ‘위국헌신 파사현정의 육사정신
국강’(國强)에 실용하라
강대국 즉 선진국의 건설과 발전을 위한 만년지 대계의 2개 근본 축의 하나는 초등학교(즉 국민교육학교) 교육에 달렸기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양성하는 학교를 사범학교라하고 선생님들을 사범이라 하였다. 또 한 축은 국방군 즉 군대에 두고 이를 지휘하는 중심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정규 4년제 육해공군 사관학교를 두었다.
이들은 비사관학교 출신들과는 달리 완벽한 초급장교 생활(오로지 위국헌신)에서 시작하여 발탁되가는 요직근무와 승진으로 엘리트화되어, 상급직위로 갈수록 요직을 담당하고 나아가 최고 책임지위에 다수 일부는 적극적 장기복무 지원 유능한 일반장교가 책임 가 포진하게 되는 것이 국군 운영의 정도요 국가군사인사 원칙인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사실과 진실을 잘몰라 함부로 말한 육사 독점이나 육사 쿠데타운운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시지탄이기는 하나 그래도 지금부터라도 부디 육사알기, 국군알기공부를 좀 열심히 해주길 소망해 마지않는다.
(2026815. 국가안보전략사상사()연구회 대표 문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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