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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효성(時效性) 품목
2025.10.01 Views 601 이상돈
어떤 시효성(時效性) 품목
책상 서랍 속에 보관 중인 나의 ‘장교자력표’ 상훈(훈기장, 상장, 표창장, 감사장) 란(欄)에 ‘국난극복기장(國難克服記章)’이 기록되어 있다. 근거는 국방부 일반명령 10호, 일자는 1981년 3월 3일이다. 기장의 약장(略章)은 군복 상의 왼쪽 가슴에 부착되어 있고, 실물은 사물함에 위치한다.
‘국난극복기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한 기장이다. 1981년 3월 2일에 제정된 국난극복기장령(대통령령 10231호)에 의거, 국방부장관이 수여했다. 수여대상자는 ①1981년 3월 3일 현재 복무 중인 대한민국의 현역장병 및 군무원, ②1981년 3월 3일 현재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 복무 중인 주한외국군의 현역장병, 이미 귀국한 미합중국의 장병으로서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복무하였던 자, ③1981년 3월 3일 이전에 전역‧퇴역‧면역 또는 퇴직한 대한민국 국군의 장병 및 군무원 중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국가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자, ④1981년 3월 3일 현재 재직 중인 공무원으로서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국가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자다. 총 79만 9천 693명이 받았다.
국난극복기장령이 제정‧시행된 후 37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 8월 7일에 국무회의에서 기장령 폐지안을 심의‧의결했다. 국방부는 “기장령에서 국난 기간으로 12.12 및 5.18 민주화운동을 포함하고 있어 기장 명칭에 대한 역사적 오류가 있고, 기장 수여가 모두 종료돼 사문화된 국난극복기장령을 적폐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마침 어느 예비역 병장이 쓴 글을 읽고 그의 심정에 공감하였다. 이에 거친 표현들이 있지만,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10.26, 12.12, 5.18, 삼청교육대, 북 무장 게릴라 소탕 등 제대 말년까지 뭐 빠지게 뺑이 쳤더니, 고생했다고 유혈입성한 대통령께서 장성 출신이라 군바리 마음을 알아주는 듯, 전역 날 국난극복기장이란 걸 하사해 주어서 가보(家寶)처럼 보관하고 있었다. 근데 정치적‧역사적인 평가가 달라져 적폐청산 일환으로 2018.5.20. 국난극복기장령이 폐지되고 말았다. 평가를 달리하건 해석이 어떻든 내 힘들었던 군 생활이 한 순간에 적폐로 몰린 것 같아 아쉽고 어이없다.”
1981년 3월 3일 현재 나는 육군 대위 신분이었기 때문에 ‘국난극복기장’을 받았다.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에는 K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위탁교육을 받고 있었다. ‘국난극복기장’은 내가 군 생활하면서 받은 첫 기장이라 애착이 갔다. 나중에 건군 40주년 기장(1988)과 건군 50주년 기장(1998), 6.25 40주년 기장(1990)을 받았다.
2016년 국회 청문회에 정복 차림으로 출석한 여군 대위의 왼쪽 가슴에 기장 3개의 약장으로 된 한 줄짜리 약장 세트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 중 건군 50주년 기장과 6.25 40주년 기장은 수여대상자가 아니었다. 이를 언론에서 지적하여 논란이 되고, 제거한 사실이 있다. 그 대위가 고의로 그 약장들을 패용했다기보다 관행과 편의주의 발상에 의해 군장점에서 판매하는 약장 세트를 부착한 것으로 보였다.
한편 미국 해군 수병(水兵)에서 출발하여 참모총장에 올랐던 제러미 마이클 부어다(Jeremy Michael Boorda) 제독은 관행적으로 패용하던 월남전 참전 ‘V 기장’을 부착했다가 언론에서 몰아세우자 1996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군인의 명예와 신뢰 추락이 부담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국가유공자증’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유공자임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신분증이다. 2025년 호국보훈의 달에 나는 서울지방보훈청에 가서 ‘국가유공자증’을 국가보훈등록증으로 교체‧발급받았다. 2023년에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후 국가보훈 대상자 신분증을 하나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2025년 7월말 기준, 83만 3천여 명이 국가보훈 대상자 본인 및 유족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이 중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은 12만 6천여 명이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 등 15종이나 되던 국가보훈 신분증을 국가보훈등록증으로 통합하여 신분증 기능을 강화했다.”라고 설명했다. 공직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할 때 제시 가능한 신분증명서 목록에 기재되어 있고, 금융거래를 할 때도 사용 가능하다.
나는 현역 시절인 2008년에 보국훈장 수훈자가 되어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증’을 발급받았다. 전역 후인 2020년에는 국가유공자 명패를 수령하여 아파트 출입문에 부착했다. 아울러 외조부께서 삼일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옥고(獄苦)를 겪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追敍) 받아 나는 국가유공자 후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유공자증’은 자랑스럽고 소중했다. 따라서 유공자라는 능동적 의미가 있는 ‘국가유공자증’을 보훈 대상자라는 수동적 의미를 갖고 있는 국가보훈등록증으로 바꾼 정책은 아쉽다.
대한민국이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품목인 줄 알았던 ‘국난극복기장’과 ‘국가유공자증’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르게 평가되고 변화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국난극복기장’과 ‘국가유공자증’이 소멸하는 현상을 보노라니, 군에서 재고관리에 적용하는 ‘시효성(時效性) 품목’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정 기간 내 사용하여야만 그 효능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품목”을 말한다. ‘시효성 품목’이 되어버린 ‘국난극복기장’과 ‘국가유공자증’에 대한 나의 소회(所懷)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난극복기장’ 수여가 종료되고 기장령의 효력이 다했으면 조용히 정리하면 될 일이지, 뭔 적폐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하는가? 기장을 수여하고 받은 사실도 역사이므로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라의 부름을 받거나 자원하여 군복을 입었던 사람들을 모독하고 명예를 짓밟는 내용이 담긴 정책을 대상자가 소수라고 해서 함부로 추진해도 되는가? 앞으로 국가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헌신‧희생할 국민이 얼마나 나올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나도 그랬지만, 군인들 대부분은 기장령이 있는 줄도 모르고 기장을 받았다. 군인은 상훈명령에 의거, 훈장‧포장‧기장과 표창장을 받는다. 앞으로 상훈 관련 일반명령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라는 말인가?
넷째, 기장은 훈장‧포장과 다른 기념장 성격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 역사적‧기념적인 가치만 남는다. 따라서 ‘국난극복기장’도 그대로 인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정부가 공훈(功勳)에 대해 보답하려는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국가유공자의 의미를 퇴색시킨 행위는 유감이다.
책상 서랍 속에 보관 중인 나의 ‘장교자력표’ 상훈(훈기장, 상장, 표창장, 감사장) 란(欄)에 ‘국난극복기장(國難克服記章)’이 기록되어 있다. 근거는 국방부 일반명령 10호, 일자는 1981년 3월 3일이다. 기장의 약장(略章)은 군복 상의 왼쪽 가슴에 부착되어 있고, 실물은 사물함에 위치한다.
‘국난극복기장’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한 기장이다. 1981년 3월 2일에 제정된 국난극복기장령(대통령령 10231호)에 의거, 국방부장관이 수여했다. 수여대상자는 ①1981년 3월 3일 현재 복무 중인 대한민국의 현역장병 및 군무원, ②1981년 3월 3일 현재 대한민국의 영역 안에서 복무 중인 주한외국군의 현역장병, 이미 귀국한 미합중국의 장병으로서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대한민국 영역 안에서 복무하였던 자, ③1981년 3월 3일 이전에 전역‧퇴역‧면역 또는 퇴직한 대한민국 국군의 장병 및 군무원 중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국가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자, ④1981년 3월 3일 현재 재직 중인 공무원으로서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 중 국가에 기여한 공적이 현저한 자다. 총 79만 9천 693명이 받았다.
국난극복기장령이 제정‧시행된 후 37년의 세월이 지난 2018년 8월 7일에 국무회의에서 기장령 폐지안을 심의‧의결했다. 국방부는 “기장령에서 국난 기간으로 12.12 및 5.18 민주화운동을 포함하고 있어 기장 명칭에 대한 역사적 오류가 있고, 기장 수여가 모두 종료돼 사문화된 국난극복기장령을 적폐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마침 어느 예비역 병장이 쓴 글을 읽고 그의 심정에 공감하였다. 이에 거친 표현들이 있지만,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10.26, 12.12, 5.18, 삼청교육대, 북 무장 게릴라 소탕 등 제대 말년까지 뭐 빠지게 뺑이 쳤더니, 고생했다고 유혈입성한 대통령께서 장성 출신이라 군바리 마음을 알아주는 듯, 전역 날 국난극복기장이란 걸 하사해 주어서 가보(家寶)처럼 보관하고 있었다. 근데 정치적‧역사적인 평가가 달라져 적폐청산 일환으로 2018.5.20. 국난극복기장령이 폐지되고 말았다. 평가를 달리하건 해석이 어떻든 내 힘들었던 군 생활이 한 순간에 적폐로 몰린 것 같아 아쉽고 어이없다.”
1981년 3월 3일 현재 나는 육군 대위 신분이었기 때문에 ‘국난극복기장’을 받았다. 1979년 10월 26일부터 1981년 1월 24일까지의 기간에는 K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위탁교육을 받고 있었다. ‘국난극복기장’은 내가 군 생활하면서 받은 첫 기장이라 애착이 갔다. 나중에 건군 40주년 기장(1988)과 건군 50주년 기장(1998), 6.25 40주년 기장(1990)을 받았다.
2016년 국회 청문회에 정복 차림으로 출석한 여군 대위의 왼쪽 가슴에 기장 3개의 약장으로 된 한 줄짜리 약장 세트가 부착되어 있었다. 이 중 건군 50주년 기장과 6.25 40주년 기장은 수여대상자가 아니었다. 이를 언론에서 지적하여 논란이 되고, 제거한 사실이 있다. 그 대위가 고의로 그 약장들을 패용했다기보다 관행과 편의주의 발상에 의해 군장점에서 판매하는 약장 세트를 부착한 것으로 보였다.
한편 미국 해군 수병(水兵)에서 출발하여 참모총장에 올랐던 제러미 마이클 부어다(Jeremy Michael Boorda) 제독은 관행적으로 패용하던 월남전 참전 ‘V 기장’을 부착했다가 언론에서 몰아세우자 1996년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군인의 명예와 신뢰 추락이 부담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국가유공자증’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유공자임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신분증이다. 2025년 호국보훈의 달에 나는 서울지방보훈청에 가서 ‘국가유공자증’을 국가보훈등록증으로 교체‧발급받았다. 2023년에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된 후 국가보훈 대상자 신분증을 하나로 통합했기 때문이다. 2025년 7월말 기준, 83만 3천여 명이 국가보훈 대상자 본인 및 유족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이 중 중‧장기 복무 제대군인은 12만 6천여 명이다.
국가보훈부는 “독립유공자 등 15종이나 되던 국가보훈 신분증을 국가보훈등록증으로 통합하여 신분증 기능을 강화했다.”라고 설명했다. 공직선거에서 투표에 참여할 때 제시 가능한 신분증명서 목록에 기재되어 있고, 금융거래를 할 때도 사용 가능하다.
나는 현역 시절인 2008년에 보국훈장 수훈자가 되어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증’을 발급받았다. 전역 후인 2020년에는 국가유공자 명패를 수령하여 아파트 출입문에 부착했다. 아울러 외조부께서 삼일독립운동에 참가했다가 옥고(獄苦)를 겪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追敍) 받아 나는 국가유공자 후손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유공자증’은 자랑스럽고 소중했다. 따라서 유공자라는 능동적 의미가 있는 ‘국가유공자증’을 보훈 대상자라는 수동적 의미를 갖고 있는 국가보훈등록증으로 바꾼 정책은 아쉽다.
대한민국이 영구적으로 보장하는 품목인 줄 알았던 ‘국난극복기장’과 ‘국가유공자증’이 세월의 흐름과 함께 다르게 평가되고 변화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국난극복기장’과 ‘국가유공자증’이 소멸하는 현상을 보노라니, 군에서 재고관리에 적용하는 ‘시효성(時效性) 품목’이 떠올랐다. 그것은 “일정 기간 내 사용하여야만 그 효능과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품목”을 말한다. ‘시효성 품목’이 되어버린 ‘국난극복기장’과 ‘국가유공자증’에 대한 나의 소회(所懷)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난극복기장’ 수여가 종료되고 기장령의 효력이 다했으면 조용히 정리하면 될 일이지, 뭔 적폐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라고 하는가? 기장을 수여하고 받은 사실도 역사이므로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나라의 부름을 받거나 자원하여 군복을 입었던 사람들을 모독하고 명예를 짓밟는 내용이 담긴 정책을 대상자가 소수라고 해서 함부로 추진해도 되는가? 앞으로 국가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헌신‧희생할 국민이 얼마나 나올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나도 그랬지만, 군인들 대부분은 기장령이 있는 줄도 모르고 기장을 받았다. 군인은 상훈명령에 의거, 훈장‧포장‧기장과 표창장을 받는다. 앞으로 상훈 관련 일반명령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라는 말인가?
넷째, 기장은 훈장‧포장과 다른 기념장 성격이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 역사적‧기념적인 가치만 남는다. 따라서 ‘국난극복기장’도 그대로 인정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정부가 공훈(功勳)에 대해 보답하려는 노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행정 편의주의에 의해 국가유공자의 의미를 퇴색시킨 행위는 유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