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와 이란은 각각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국가로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양대 축을 담당해 왔다. 지금 세계 원유시장의 최대 관심사는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낳을 파장이다.
과거 중동의 정세 불안은 대개 유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 세계 석유공급의 핵심 지역인 중동에서의 사건과 사고는 석유의 생산과 수출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가장 최근인 2010년부터 2014년 상반기까지 유가가 상승하고 고유가가 유지됐던 것도 중동 북아프리카의 지정학적 불안이 크게 기여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아랍의 봄’으로 불리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고, 그 이후 여러 나라에서 내전이 발발한 것이 유가에 영향을 준 것이다. 또한 2014년 상반기에는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이슬람 국가)의 준동도 고유가 유지에 한몫 했다. 그러나 2014년 하반기부터 상황이 급변해 지정학적 불안이 유가를 상승시키는 힘은 미약해졌다.
수년간 지정학적 사건들이 석유시장의 공급 과잉에 의한 가격 하락 요인을 압도하면서 유가를 지탱했으나 더 이상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 재고가 누적되는 상황을 이겨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공급 과잉으로 유가가 폭락하는 가운데 OPEC이 종전과 같이 생산량 감축에 나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점유율 유지를 위해 생산량을 확대하면서 지정학적 불안의 영향은 더 작아졌다. 나아가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은 OPEC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유가의 하락 요인이 됐다.
사실 사우디와 이란은 지난 수년간 시리아와 예멘 내전을 통해 대리전을 치러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이란은 시아파가 집권한 정부를 지원하고 사우디는 반군을 지원했다. 사우디는 수니파가 집권한 정부를 지원하고 이란은 시아파인 후티(houti) 반군을 지원한다. 이번에 사우디가 이란과의 국교 단절을 선언하자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자국 시위대의 사우디 대사관 공격이 잘못된 것이라면서 유화책을 쓰고 있지만 양국 간 갈등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16일 서방국의 이란에 대한 제재 해제로 이란이 원유 수출을 재개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란의 원유 생산과 수출은 2012년 서방국의 제재가 시작된 이후 하루 100만 배럴 가량 줄어든 상태다. 이란 정부는 제재가 해제되자 곧바로 원유수출을 하루 50만 배럴 늘릴 것이라고 언급했고 1년 이내에 제재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이라는 계획을 제시했다.
사우디는 이란이 제재를 받기 시작한 이후 지난해까지 원유생산을 하루 80만 배럴 늘렸다. 또 이란의 복귀를 감안해 생산을 줄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우디 입장에서 이란의 석유판매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서방국의 제재 해제를 계기로 세력 확장을 도모하려는 이란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란이 증산한 물량을 공급 과잉인 석유시장에 판매하면 OPEC 산유국 간의 시장점유율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물론 지난달 중순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이란의 핵협상 이행을 검증하는 보고서 제출과 동시에 이란 제재가 해제될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란 원유수출의 영향은 이미 유가에 상당부분 반영돼 있는 상황이다. 이란의 수출 확대가 추가적인 가격 하락을 가져오지는 않더라도 OPEC의 카르텔 기능 회복에 장애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사우디와 이란 갈등의 영향이 과거의 지정학적 사건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중동정세 불안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국제 석유시장이 수급 균형을 회복하기 시작하면 그 영향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원유수입의 84%를 중동에 의존하는 우리에게 중동정세 불안은 여전히 우리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중동 산유국과의 에너지 외교를 강화하고 비상시를 대비한 수급 대책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