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본사 고문·전 국무총리
올가을은 가히 ‘정상회담의 계절’이라고 부를 만큼 수많은 정상회의와 회담이 예정되어 있다. 9월 초에는 베이징에서 한·중 정상회담이, 이어 워싱턴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10월에는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지속가능발전을 주제로 세계의 정상들이 대거 참석하는 9월의 유엔총회, 12월에는 기후변화 공동 대처안을 확정하는 당사국 정상회의가 파리에서 개최된다. 또한 지난해에 연기되었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와 우여곡절을 겪어온 한·일 정상회담도 올가을 서울에서 열릴 것이다. 한반도, 동아시아, 지구촌의 평화와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정상의 모임이 숨가쁜 페이스로 이어질 전망이다.

정상회담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책임자들 사이의 모임이라는 공식적인 성격 못지않게 정상들 사이의 인간적 관계가 그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상호 간의 친근감과 우정, 도덕성과 정직성에 대한 존경, 특히 어려운 과제를 함께 풀어나갈 수 있다는 인간적 신뢰는 회담 성공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각기 박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좋아하며 신뢰하고 있다는 인상은 국내외에 널리 퍼져 있다. 오바마, 시진핑 두 지도자와 이렇듯 친근한 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원수는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외교의 큰 자원인 박 대통령의 이러한 특별한 위치를 평화통일전략의 구체화에 적극 활용할 단계에 이른 것이다.
오늘의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최대 위협은 북한의 국제사회로부터의 이탈과 고립이 극도에 달하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보다는 평화에 대비하는 자세로 전환을 유도해야 할 때다. 한반도나 아시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데 남과 북이 함께 자주적으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할 때가 온 것이다. 한편 소극적 현상유지정책으로 사태를 방관하는 미국과 중국의 무책임한 입장도 조속히 수정되어야만 한다. 북한 핵은 한국이나 일본에 못지않게 미국이나 중국에 대한 위협이 날로 증대하는 데서 전략적 파국을 몰고올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9월에는 시진핑 주석에게, 그리고 10월에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반도의 평화통일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유지 체제를 목표로 하는 미·중 간의 역사적 대타협을 적극 호소해야 될 것이다.
이러한 미·중 간의 대타협이 이루어진다면 안보 차원에서의 긴장 완화에 더해 세계경제의 불안정성과 위기에 공동 대처할 수 있는 여지도 마련할 수 있다.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의 오바마·시진핑 정상회담은 여러 면에서 실망스러웠다. 날로 악화하는 북한 핵 문제를 방치하는 두 초강대국의 안일한 입장은 긴장 고조와 대화 단절이란 큰 대가를 치르게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 한반도 분단 70주년을 이대로 넘겨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한반도의 평화통일,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지구촌의 평화는 연계되어 있는 꿈이며 도전이다. 박 대통령은 평화를 위해 한국이 감당할 수 있는 응분의 책임과 조치를 설명해야 할 것이다. 당장은 부담스럽더라도 장기적 상호신뢰의 바탕이 될 우리의 기본 입장을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는 미국과 중국이 포괄적 차원에서의 공동 보조를 취할 때에만 유효한 것이다. 평화의 시대를 영입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되는 정상회담이 되기를 기원한다.
이홍구 본사 고문·전 국무총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