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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해킹’ 인권 대 안보
2015.08.06 Views 1953 관리자
기고]‘국정원 해킹’ 인권 대 안보
여당은 안보가 중요하다고 하고, 야당은 인권이 우선이라고 한다. 인권과 안보는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니며, 둘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보편의 상식이다. 그래서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하는 것은 총체적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렵고도 조심스럽다. ‘국정원 해킹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과 관련, 놓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감청이 과연 “만악의 근원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위키리크스’는 미 국가안보국(NSA)이 전 세계 국가 수반들에 대한 감청 활동을 연달아 폭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전 세계 첩보활동 비용의 60%를 사용하는 첩보 초강대국이라면서 그 주요 목적은 ‘반(反)테러’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지배라는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첩보 비용의 비중이 군사비보다 높다는 것은 군사력보다 정보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은 적과 동맹국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대한 철저한 사찰과 감시를 통해 세계를 통제하는 ‘대형(Big Brother)’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군사주권보다 정보주권이 더 중요한 ‘첩보 제국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인권과 안보는 그 어느 쪽이 우선될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안철수 의원은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정보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국민의 약속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우리는 ‘헌법’이라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인권과 안보는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정당 간 ‘비난 게임’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사항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정치사상가인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평화를 실제로 보장해 주는 공동체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 시민 평화의 본질은 안전이라며, 안전을 국가의 핵심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즉 국가의 주권과 힘이 있어야 인권도 담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의 질서와 안보로서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역설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우선 정책기조가 그 시사점이다.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을 두고 개인의 인권 보호와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역량 강화 가운데 어떤 가치를 더 우선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할까? 나라와 국익을 위해, 어떤 방식이 더 합당하고 효율적인지를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다. 북한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국정원이 더 이상 정보기관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자유와 평화를 침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현대전에서 첩보수집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법의 틀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 안보와 대테러의 이름으로 인권이 무시되고 신공안정국 분위기에 젖어 국민의 자유권이 박탈당한다면 더더욱 위험스러운 일이다.
이번 논쟁은 지금 분위기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이번 일이 사실 확인보다는 정치적 헤게모니 측면에서 종결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나 현실은 규범을 앞선다. 그러나 안보와 인권정책의 궁극적인 명분은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정보수집활동이 국가안보 논리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면, 앞으로의 방향은 인권 측면을 좀 더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 즉 국민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국익을 위한 당위적 논리가 상호 허용될 수 있는 방향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항상 국가와 국민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과 관련, 놓치고 있는 두 가지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감청이 과연 “만악의 근원인가” 하는 점이다.
최근 ‘위키리크스’는 미 국가안보국(NSA)이 전 세계 국가 수반들에 대한 감청 활동을 연달아 폭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전 세계 첩보활동 비용의 60%를 사용하는 첩보 초강대국이라면서 그 주요 목적은 ‘반(反)테러’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지배라는 정치적·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첩보 비용의 비중이 군사비보다 높다는 것은 군사력보다 정보력이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미국은 적과 동맹국을 막론하고 세계 곳곳에 대한 철저한 사찰과 감시를 통해 세계를 통제하는 ‘대형(Big Brother)’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군사주권보다 정보주권이 더 중요한 ‘첩보 제국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인권과 안보는 그 어느 쪽이 우선될 수 없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안철수 의원은 “국가의 역할은 국민의 정보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국민의 약속이 있을 뿐이다. 그것을 우리는 ‘헌법’이라고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인권과 안보는 마치 작용과 반작용처럼, 이분법적 구도 안에서 정당 간 ‘비난 게임’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사항으로 보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반성과 고민이 필요하다.
정치사상가인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평화를 실제로 보장해 주는 공동체만을 국가로 인정할 수 있다’면서 시민 평화의 본질은 안전이라며, 안전을 국가의 핵심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즉 국가의 주권과 힘이 있어야 인권도 담보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국가의 질서와 안보로서의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한 역설이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우선 정책기조가 그 시사점이다.
이번 국정원 해킹 사건을 두고 개인의 인권 보호와 정보기관의 정보수집 역량 강화 가운데 어떤 가치를 더 우선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무엇을 더 우선해야 할까? 나라와 국익을 위해, 어떤 방식이 더 합당하고 효율적인지를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요체다. 북한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엄혹한 현실을 도외시하고 국정원이 더 이상 정보기관이기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지만, 주권자인 시민의 자유와 평화를 침해할 수도 없는 것이다.
현대전에서 첩보수집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법의 틀에서 벗어난 것을 인정할 수는 없다. 안보와 대테러의 이름으로 인권이 무시되고 신공안정국 분위기에 젖어 국민의 자유권이 박탈당한다면 더더욱 위험스러운 일이다.
이번 논쟁은 지금 분위기로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이번 일이 사실 확인보다는 정치적 헤게모니 측면에서 종결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언제나 현실은 규범을 앞선다. 그러나 안보와 인권정책의 궁극적인 명분은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정보수집활동이 국가안보 논리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고 진행됐다면, 앞으로의 방향은 인권 측면을 좀 더 고려하는 게 필요하다. 즉 국민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인가에 방점을 두고, 국익을 위한 당위적 논리가 상호 허용될 수 있는 방향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항상 국가와 국민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