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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역설

2015.06.22 Views 2150 관리자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역설
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대규모 전쟁이었던 6·25전쟁은 불행하게도 한 핏줄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눈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시푸른 여름의 산하를 벌겋게 물들인 숱한 젊은 피의 희생 위에서 대한민국은 오늘 이만큼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좋은 전쟁도 없고 나쁜 평화도 없다. 그렇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좋고 나쁘고의 차원이 아니다. 생존이냐 파멸이냐의 문제다. 북한의 무력도발이 끊이지 않는 안보 위기에서 군사력 확보는 평화를 위한 불가피한 역설이다. 그 역설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전쟁을 치른다.” 그 역설 때문에 국민들은 금쪽같은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힘겹게 국방비를 대고 있는 것이다.

핵무장 세력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 군의 고위 장성들이 국방예산을 빼돌리고 무기 시험결과를 조작해 불량무기를 납품받았다고 한다. 이런 군대에 어떻게 나라의 안보를 믿고 맡길 수 있을까. “무기는 비록 백 년 동안 쓸 일이 없다 해도, 단 하루라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兵可百年不用 不可一日無備).” 다산의 ‘목민심서’ 병전(兵典)에 있는 말이다.

그러나 나라의 안전을 무기의 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1000명의 오합지졸이 100명의 정예군을 당하지 못하는 법이다. 지난 해 육군 최정예부대에서 포로체험 훈련을 하던 대원 2명이 질식사한 사고가 발생했다. 머리에 두건을 쓴 그들은 숨이 막혀오자 살려달라고 절규했지만, 훈련교관은 내연녀와 휴대폰으로 통화하느라 구조요청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 교관은 군사법정에서 벌금형을 선고받고 석방돼 부대에 복귀했다. 우리 군의 정신전력은 과연 믿을만한가?

군사전략가 클라우제비츠는 무력과 정신전력의 비중을 1대 3으로 보았다. ‘무력은 칼집, 정신력은 칼날’이라는 나폴레옹의 평가와 다르지 않다. 부푼 꿈을 펴보지도 못한 채 현충원의 무명용사 묘역에 누워있는 젊은 넋들의 한을 되새기면, 수억 원 대의 뇌물이 오고갔다는 방산(防産) 비리 뉴스에 국민의 마음은 막막하기만 하다.

힘없는 민초의 아들들이 피땀 흘려 지키는 최전방 철책선에서 평화의 온갖 기득권을 누리는 정·관계 고위층의 자식들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은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크나큰 심리적 장벽이 아닐 수 없다. 병역면제자, 병역특례자들이 줄줄이 고위직에 오르는 모습도 분단국의 안보상항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조리가 아닐까? 군대가 ‘청년들이 가서 썩는 곳’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사르트르는 개탄했을 것이다. “가진 자들이 전쟁을 선언하면 가난한 자들이 (그 전쟁에서) 죽는다.”

그렇지만 북한의 실정은 우리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평상시에 우리 병사들은 훈련을 하지만 북한 병사들은 농사를 짓거나 건설현장에 투입된다. 우리의 현역병 복무기간은 짧게는 1년 9개월에서 길어야 2년인데, 북한은 남자가 10년에서 13년, 여자가 7년에서 9년 동안 군복무를 한다. 꽃다운 청춘 10여년을 병영에서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근무환경도 열악하다고 한다. 뉴스 화면에 비치는 북한 병사들의 깡마른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북한은 몇 년 전 현역병 입대의 신장 기준을 1m42㎝로 낮췄다. 남한의 기준은 1m58㎝다. 북한 청소년들의 발육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는 아낌없이 돈을 퍼붓는다. 남북한 병사들의 평균 신장 차이 16㎝에 함축된 의미가 분단 70년의 역사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보훈의 달 6월을 맞을 때마다 우리의 가슴은 선지자 이사야가 선포한 평화의 기원으로 가득 차오른다. “칼을 쳐서 쟁기를,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니,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않을 것이다.” 그 평화의 날을 위해 아직은 전쟁 연습(훈련)을 그칠 수 없다.

한 세기 전 영국의 문명비평가 허버트 조지 웰즈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우리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우리를 끝낼 것이다.” 이 땅에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불시의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평화를 위한 이 불가피한 역설에 우리 군은 얼마나 충실한가, 그리고 정치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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