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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불평등’이라는 21세기 최대 안보위협

2015.06.05 Views 2000 관리자

[정동칼럼]‘불평등’이라는 21세기 최대 안보위협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한국에서 3차 감염까지 생긴 것으로 알려지면서 팬더믹(Pandemic)이라는 영어 단어가 일반인에게도 소개되었다. 한국말로 번역하면 ‘대창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보건기구(WHO)가 분류한 전염병 경보단계의 최고단계를 의미하며, 대량 살상 전염병이 생겨날 때 이를 팬더믹이라고 표현한다.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이나 20세기 초반 수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홍콩 독감이 이에 해당된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 덕분에 전 국민이 금융전문용어를 익힌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메르스 때문에 전 국민이 의료전문용어를 익히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팬더믹이라는 전염병 대창궐 현상은 국제정치, 국제안보에서도 최근 주목을 받는 현상인데, 그 이유는 이른바 ‘비전통안보위협(Non-Traditional Security Threat)’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전통안보위협이란 군사적으로 국가안보에 위협을 가하는 전통안보위협이 아닌 불법 이민, 사이버 위협, 마약거래, 초국경 인신매매, 불법 소형무기 거래, 해적, 테러리즘,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팬더믹 등을 일컫는다. 강대국 간 핵을 개발해가면서까지 으르렁대던 냉전이 20세기 말 총성도 울리지 않고 종식된 이후에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한 안보위협이다. 공산권이라는 적대국이 사라지고, 서방의 질서인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다 보니 국가 간 전쟁보다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전 세계적 확산과 작동에 위협을 가하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이 더욱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고 팬더믹도 그중의 하나인 셈이다.

이미 미국은 컴퓨터 해킹을 통해서 국가의 정보기관이나 기간산업을 마비시키고, 금융시장 및 지적재산권을 교란시키는 사이버 안보위협을 가장 중요한 안보위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유럽은 불법 이민 혹은 난민의 유입으로 인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석해균 선장과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유명해진 소말리아 해적 등도 세계 해운업계와 해로 안정에 위협을 가하는 세력이다. 이러한 안보위협의 특징은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위협이 과거와 같이 국가 전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화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세계화라 함은 전 세계적인 규모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안정적인 확산과 작동을 의미하는데 사이버 위협이나 불법 이민, 불법 마약거래, 해적, 테러리즘, 팬더믹 등은 세계적 규모에서 작동하는 시장경제를 교란하거나 세계 시장경제를 연결하는 연결망의 핵심 링크나 노드를 마비시키는 위협이다. 미국이 주도하여 1945년 이후 만들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 그 자체를 주변부에서부터 갉아먹고, 혼란을 가져오고, 교란시키는 그러한 형태의 위협인 것이다. 그래서 비전통안보위협은 바로 국제질서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정말 중요한 비전통안보위협이 있다. 그건 메르스 같은 팬더믹이나 사이버 안보위협이 아니라 ‘불평등’이라는 위협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불평등이 활력의 동인이 되기도 하지만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고, 불평등 극복의 희망이 없어지면 사람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 자체의 정당성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다. 질서는 정당성이 무너지면 무너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미국이 주도하여 구축한 전 세계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 즉 자유주의 국제질서 그 자체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의하면 선진국 인구의 5분의 2는 지난 몇 십 년 동안 소득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고, 선진국 34개 회원국의 소득 불평등이 꾸준히 증가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보스 포럼으로 알려진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불평등을 향후 세계가 직면한 가장 위험한 리스크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이렇게 불평등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 내의 모든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에 대한 대규모의 반발을 야기할 수 있어 이러한 반발이 가져오는 혼란이 어떻게 발전할지는 아무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러한 위협에 대한 고민으로 이미 선진국들은 불평등을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이고 다양한 토론과 대책에 나섰으며, 상위 0.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불평등을 얘기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불평등이라는 근본적인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꺼내지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대처할 수 있는 메르스라는 잠재적 팬더믹에도 쩔쩔 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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