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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것을 그리워 한다

2015.08.13 Views 976 전인구

`마른장마`라고 올 장마에는 중부지역에 비같은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극심했고 제한급수 하는 지역까지 있었다. 폭우가 시원스럽게 쏟아지거나 태풍이 안오나 기다려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열대야로 잠못드는 밤이면 차라리 추운 겨울이 그래도 나은듯 싶다. 막상 추운 겨울이 되면 또 그 반대의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고... 그런데 어릴적 농촌에 살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조차도 사치스러운 상상이 될 것 같다.

농촌에서 자연의 흐름에 따라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에는 각 계절이 다 있어야 농사가 되었다. 더운 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받아야 곡식이 자라고 열매가 알차게 익는다. 잡초도 길게 자라야 소를 먹이고 풀을 베어 거름으로 쓴다. 거름 없이 농사가 안된다. 소, 돼지 마굿간에서 나오는 거름은 물론이고 닭똥도 소중한 거름이다. 인분, 소변 등 버릴게 하나도 없다.

여름이 덥지 않고 햇볕이 부족하면 벼가 병들거나 쭉정이가 많아 수확이 줄어든다. 비도 적당히 내리고 햇볕도 강하게 내려쬐어야 풍년이 된다. 그러나 어떤해는 가뭄으로, 또 어떤 해는 홍수로 풍년이 못되는 해가 더 많다. 하늘만 바라보며 애를 태우지만 해결하는 길이 없었다. 또 겨울이 추워야 다음해에 병충해가 덜하다. 다행히도 황강 상류에 댐이 생기는 바람에 그 이후에는 가뭄이나 홍수 피해가 없어지고 볍씨품종까지 개량되니 해마다 풍작이라 풍,흉년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지금이야 농업인이 소수이고 대부분 직장인이니 이왕이면 덜 더운 여름, 덜 추운 겨울이 좋겠지만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낯선 곳에 대한 동경이 있다. `강건너 경치, 산너머 남촌`을 궁금해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 오가는 개비리 절벽길을 지나며 강건너 몇겹의 산 뒤로 보이는 뾰족하게 생긴 높은 오도산 뒤쪽으로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늘 궁금했다. 그 궁금증이 일찍이 중학을 졸업하고 졸업생 중에 나 혼자만 고등학교를 멀리 서울로 떠나게 한 동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운의 큰 뜻을 품었거나 용기가 특별해서도 아니었다. 어떤 바람이 불어 무작정 서울로 가겠다고 떼를 쓰니 농사가 얼마 되지도 않는 처지의 부모님 입장에서는 감당이 안될 일이었을 게다. 마침 그 즈음에 우연이었던지 한밤에 `경끼`를 몇번 했었다. 이에 놀란 어머니가 이러다 애가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이버지를 설득하셨고 그렇게 하자고 큰 결심을 하셨다. 덕분에 서울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제주도를 가면 이국적 분위기가 느껴진다. 어느 외국에 가보아도 산천경계의 풍경이나 문화가 색다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오면 어떨까?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 넓지 않은 국토에 아기자기 온갖 여건들이 다 갖추어져 있는데다 사람들이 무척 역동적으로 보일게다. 천만 인구의 대도시에서 곧바로 산행길로 연결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곳이 세계 어디에도 드문데 우리는 그 여건도 좋다. 고궁이나 박물관이 가까이 있고 큰 강은 물론, 바다로도 금방 갈 수 있다. 지진이나 태풍, 해일, 자연재해도 적은 안정적 위치의 금수강산.

어찌 보면 우린 가진게 너무 많아 그 소중함을 모르고 산다. 가진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없는 것까지 억지로 끄집어내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사는 사람이 참 많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이 행복해지는 길이 아닌 줄 몰라서가 아닐텐데 말이다. 가진 것은 이만큼 하면 되었으니 이제 물질적 관점보다는 `靈性`이 중시되는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행복`은 거기에 있을테니까.

시인 杜甫는 삼복더위에 이런 시를 읊었다.
[大暑]
南望靑松 架短壑
安得赤脚 踏層氷
(남쪽을 바라보니 푸른 소나무가
골짜기에 걸쳐 있는데
어찌하면 맨발로
두터운 얼음을 밟을 수 있을까)

상상은 풍부하게 하여 발전의 기회를 만들어 가되 범사에 감사하면서 쉬지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한 일들이 모두 `헛발질`에 불과했다는 것에 후회하는 날이 오기 이전에.



*개비리 절벽길에서 건너다 본 강건너, 저 산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왼쪽이 우리동네이고 길따라 오른쪽에 초등학교가 있다. 지금도 같은 모습이다.


매일 넘어다니던 개비리 절벽길.
`난중일기`에 백의종군으로 이 인상적인 길을 지난 이순신장군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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