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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담임선생님 상에 55년 전 그 시절을 회고하며
2015.01.11 Views 1013 전인구
1.7(수) 저녁 하계동 을지병원
오랜 기간동안 투병생활을 해 오신 55년 전 6학년 담임 문길주선생님이 별세하셨다.
건강하실 때 어느 스승의 날에 모시고 모임도 가졌는데 병상에 누우신 이후로는 거동을 못하셨다.
초등학교 어린시절에 우리들을 지도해주셨던 추억이 어느새 이 만큼 세월이 흘렀나 보다.
카리스마가 있던 우리동네 한 친구가 매일 아침 학교갈 때 동네 앞에 친구들을 모이게 하여 줄을 서서 뛰어가게 했다. 책보를 허리나 어깨에 메고 필통소리가 달그락거리며 뛰었다. 먹을게 없어 밥먹고 배가 빨리 꺼진다고 어른들이 뛰지 말라고 했던 시절이었는데 우린 개비리 절벽 고갯길을 힘들게 뛰어 갔다. 누가 좀 말려 주었으면 싶었는데 옆동네에서 출근하시던 문길주선생님이나 이과진선생님을 만나게 되면 걸어서 가라고 이르신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다가 조금 빨리 선생님을 지나쳐 간 후에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학교가는 길과 학교 끝나고 동네까지 오는 길에 우리 동기 친구들 대여섯명은 무척 고달픈 시간을 보냈지만 아무도 감당하지 못했던 그런 친구였다. 다른 동네와 공차기를 하여 지면 기합을 받았고 이기면 가끔씩 그 당시로서는 먹기 어려웠던 국화빵을 사주기도 했다. 나중에 해병대로 월남전 참전 후 귀국 전역하여 서울에서 가수로, 영화배우로 활동하려 했던 것으로 소식을 들었다. 그러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택시운전을 하면서 생활하다가 50 전후에 일찍 타계했다.
오래 전 고향에서의 일들을 되돌아 보면 우린 별로 말이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이야 쉬지않고 말을 잘 하지만 나만 해도 반장으로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면 선생님이 이렇게 하라고 시키는대로 따라 하면서 참 어리숙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선생님이 참 답답하게 보셨지 않았나 싶다. 물론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내 별명을 `쑥구렁이`라 부르실 정도로 행동도 느렸고 말도 잘 하지 않았다. `시인도 말 안하면 어떻게 아는냐?`고 하셨지만 이러면 이런대로 저러면 저런대로 그냥 움직였지 좋다 싫다 말이 없었던 어린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조근조근 자상하게 말하는 스타일이 아닌 걸 보면 60여년 세월이 흘렀어도 사람은 참 잘 변하지 않는가 보다. 게중에는 어린 시절과 전혀 다른 성격으로 깜짝 놀랄 정도로 바뀐 친구도 가끔 본다. 주로 정치권 가까이에서 보좌관으로 활동했던 친구들의 경우로 보인다.
시골에 고향을 두고 한 학년 90여명이 6년을 함께 지냈던 그 추억들은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정겹고 아름다운 추억이다. 우리 세대의 친구들은 참 좋은 시대를 살아왔던 것으로 자부해도 되지 않나 싶다. 6.25 전쟁 직후 역사상 가장 가난한 시절, 아마 세계에서 최빈국이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의 어린시절을 보냈고 그 이후 점차적인 발전을 거듭해 와서 이제는 세계 최선진국과 비교할 정도의 수준에 까지 이른 것이 우리 한세대 동안에 다 이루어 졌으니 얼마나 큰 변화인가? 그 어려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 풍요롭게 살고 있다. 이런 변화에 고마와 해야 하고 행복해야 하는데 오히려 불평 불만이 더 많이 표출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우리 시대에 이룬 이런 기적같은 일애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큰데 말이다.
옛 선생님과 지냈던 그 시절이 떠오르면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어려웠던 그 당시를 다시한번 회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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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인 1960년,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의 제자들이 함께 문상을 왔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30세정도 였나 보다.
당시 지도 덕분에 친구들 대부분이 국가적 중요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듯 싶다.
카이스트 박사, 그룹회장, 건설사 사장, 기무사, 국방부 재직 등

